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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

2008/10/23

장호순 저

 

□ 대한민국은 국민의 소리, 자유와 인권이 법으로 보장되는 사회인가?

요즘 서울 한복판에서는 밤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촛불 하나에 마음을 담아 정부의 정책변화를 기도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며 국민을 위한 정치로의 귀향을 바라고,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모습은 마치 과거 독재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 같다.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 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모습이지만, 기본권과 국민의 알 권리가 철저히 존중되는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아직 이루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를 보면서, 미국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미국사회를 지탱해 온 연방헌법과 사법부의 명쾌한 판결, 그로부터 얻어지는 정당한 힘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는 ‘대통령의 권위, 사상과 이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정한 사법제도, 평등권 보장’의 6장에서 총 20개의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 헌법이 구성되는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인권보호에 발 벗고 나설 것 같은 미국사회에서도 판례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었음을 흥미 있게 비춰주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긍정적 판례가 오늘날 미국이 진정한 법치주의질서와 인권에 영향을 끼쳐, 민주주의 사회에 중요한 역사적 기반이 되었음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판례 중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언론의 자유에 관한 판결 부분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 언론 자유에 대한 이념의 뿌리 강의 시간에 옛날 독재정치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 사후처방 등 우리나라의 언론을 속박하는 규제와 법체계에 관해 배움으로써, 언론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계성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에 우리나라의 언론에서 미국의 ‘황색 저널리즘‘같은 신문이 발행되었다면, 공직자를 비판하는 보도로 심각한 명예훼손 처벌의 위에 서 있게 되었다면, 워터게이트사건과 같이 국가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남용되거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없도록 언론을 차단하였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법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존중되는 명쾌한 판결이 내려져서, 미국 사회처럼 그것이 이후의 더 큰 사례에서도 흔들림 없이 법치질서를 유지하여 언론자유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었을까? 미국은, 언론의 자유 또는 방종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는 앞의 사례들을 통해, 어떠한 파장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모든 사회의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언론의 자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판결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와는 법체계에서부터 본질적인 차이가 두드러짐을 알게 해 주었다. 앞에 언급한 사례 중 수업시간을 통해 언론의 진정한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부분과 일치했던 것은, 공익을 위해 신문발행을 사전에 중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황색 저널리즘’의 사전규제 처방에 관한 판례였다. 192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덜루스에서는 매주 선거, 뇌물수수로 부패한 정치인들과 경찰관들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지도급 인사들의 도박, 매출, 외도 등에 관한 것을 주요 기삿거리로 삼는 모리스의 선정적 주간지들이 발간되고 이것에 의한 피해가 확산되고 있었다. 덜루스의 시장이 허위기사를 게재한 모리슨을 대상으로 법원에 정간명령을 청구함으로써, 판사는 이러한 ‘황색 저널리즘’을 선량한 의도와 정당한 목적으로 정확한 사실만을 보도하는 언론만을 허용하는 ‘공중도덕보호법’ 에 의거, 저속하고 비열한 신문을 사전에 금지할 정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은 “언론의 자유는 영원히 침해될 수 없으며 누구든지 주제에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미네소타주의 헌법을 기초로 한 판례가 아니었고, 언론의 자유권을 존중하며, 정부 관리들을 비판할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것을 강조하는 연방헌법에도 들어맞지 않는 판례였다. 또한 지금까지의 언론에 대한 판례는 형사법상이나 명예훼손법에 의한 사후처벌이었던 반면, ‘공중도덕보호법’은 사전 억제 장치로 언론의 자유에 대해 중대한 위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색 저널리즘’의 정간명령에 관한 법적 투쟁은 모두의 관심 속에 계속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언론의 사전규제에 관한 논란이 도마에 오르게 되었고, 언론을 이용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금품 갈취를 일삼는 저질 언론을 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이 법은, 언론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에 도움을 주는 법이라며 정간 명령을 찬성하는 ‘공중도덕보호법’ 옹호세력과, 뉴욕 주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여 긍정적 효과를 낳았던 ‘뉴욕타임즈‘를 예로 들면서, 어떤 표현도 사전 억제나 사전 검열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이것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 1조의 원래 의미라고 강조하며 무책임한 언론의 허위보도나 공갈협박 등을 통한 금품갈취는 명예훼손이나 기타 형법을 통해 처벌하면 된다는 언론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반박 세력이 맞서게 되었다. 갈등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연방대법원은, 정부 관리들을 비판할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사회에서는 이미 언론의 사전억제조치를 금지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황색 저널리즘’의 정간 명령을 반대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방대법원은, 언론의 그릇된 보도에 대한 처방은 명예훼손법에 의해 보상과 처벌을 요구하는 사후처방으로써 요구되는 것이지 신문이나 잡지에 대해 사전에 간행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재확인했다. 또한 “모든 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불가피한 것이고 언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라고 판결했고, 민주사회에서의 용감한 언론이 필요한 현실에서, 일부 무책임한 언론인들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남용된다고 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언론이 사전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줬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미국사회는 아주 밑바닥으로 취급되는 선정적인 주간지를 보호함으로써, 언론 전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었고, 제일 저속한 주간지에 의해 언론의 자유를 확고히 한 초석이 되는 판례를 얻게 되었다. 또한, 이 판례는 미국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언론 자유의 침해에 대해서는 매우 철저히 보호해 오는 선례로 남겨지고 있고, 인권보호의 보편성 원칙과 기본권에 충실한 미국의 법치주의질서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직까지 언론의 사전규제 방침이 뿌리 뽑히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세력 간에 논란의 여지는 있었겠지만 시민단체에서 당장 발행을 중지시켜달라는 명령을 신청했거나, 정부 측의 제재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후 잠잠히 그 신문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미국의 사례와는 정 반대로 예측하게 된 이유는, 오랜 민주주의 역사와 언론에 대해 깨어있는 사고를 지닌 미국과 우리나라와는 법체계와 기본권의 이념적 뿌리에서부터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사전규제뿐만 아니라, 사후처벌의 한 방편인 명예훼손법의 적용형태에서도 언론을 최고의 감시기관으로 인정하며 언론이 불가피한 부작용에 대한 숨 쉴 공간을 제공해 주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와 공직자를 비판하는 언론은 사회 최악의 해악이라는 이념적 뿌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외침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언론의 자유를 방종이라 성급히 판단해버리는 등,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기 보다는, 언론을 탄압하고 규제하는 것이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이라는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 무엇이 우선이라고 결론 짓진 않겠다. 다만, 언론자유를 간섭하지는 말아달라. 나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부분을 깊이 다루었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기본권과 사법제도, 평등권보장 등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되는 사례들과 그것들에 대해 공정한 법적판단을 내린 판례들을 살펴본 후, 법원 판단의 중요성과 판단기준의 잣대로 쓰이는 법에 대한 인식,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가치관이 중요한 통로로 쓰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언론이 마음껏 소리 낼 수 없게 된 근본은 과거 독재정치의 잔해로 기억되는 법체계의 질서의 관행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드러내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해하며, 공정하기보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왜곡되어 오거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과거의 이념들이 뿌리 뽑히지 못하고 계속 다른 줄기를 내고, 열매를 맺게 된다면, 우리가 외치는 진정한 자유는 투쟁과 노력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쟁취할 수 없는 희망사항이 될 것이다. 사회의 근본 틀인 법치주의의 질서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바른 목소리를 올바르게 표현해 줄 수 있는 발전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을 언론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그러한 역할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가져야 할 기본권에 대한 원칙과 자유의 보장은 지금 우리사회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범위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이 감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며, 사회 내부로 함께 녹아들 수 있는 법의 정당성 아래 존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섣불리 판단하진 않겠다. 다만, 그것 때문에 규제와 억압의 형태로 언론의 자유를 속박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언론자유의 이치는, 일부 썩은 가지들을 마구 쳐내는 것보다는 나무 전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여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언론자유의 기본권이 존중되며, 깨어있는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가 인정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이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법의 체계가 이루어지는 법치주의국가, 언론자유의 선진화로,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적 성장도 함께 이루어 가는 국가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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