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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온기

2016/05/24

디어마이프렌즈 드라마를 몰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70의 모습은 어떠려나. 천식으로 고생하는 쭈구렁 할머니가 되어 있음 안될텐데. 자식들은 몇이나 있을까. 나랑 영감 보러 자주 오긴 하려나. 영정사진은 몇살 때 찍어야 그래도 이쁘게 나올까. 아 혹시 나 그때도 일하고 있으려나? 설마 나 혼자는 아니겄지.

더 생각하다간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만뒀다.
오늘 하루를 잘 채워 사는 것도 버거운 요즘인데. 내일 모레, 내년 일도 아닌 40년 후를 생각하고 있는 꼴이라니. 

한달 정도 아빠가 병원에 계셔서 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간병인 생활을 했다. 
처음 한 주는 의사들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것도 익숙해진 것인지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지를 생각한다. 지금은 처음 병원에 가셨을 때 보다 조금 나아지셨지만 여전히 약한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저런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해서 어떻게 좋아질 지를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나빠지지 않을까로 무게가 실리고.

기운을 좀 차리셔서 일반병동으로 옮겼을 때 차서방이 매일 병원을 찾았다. 
남들은 황금연휴라고 콧바람 쐬러 가는데, 멘탈 약한 마누라 챙기랴 장인어른 식사 챙기랴 바쁜 차서방이 아빠도 너무 고맙고 예뻤나 보다. 어느 날엔 나랑 오빠도 몰랐던 유년시절 이야기를 차서방에게 쭉 하시는 걸 옆에서 가만 앉아 들었다. 
아빠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고단했다. 좀 크면 낫겠지 싶었는데 이야기가 20대로 접어 드는데도 불쌍하고 짠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 계속될 뿐 더 나아지는 법이 없었다.
왕만두 한 알 마음 편하게 먹고 싶었던. 평범한 행복을 바라던 소년은 그 후로도 쭉 외롭게 홀로 컸고 장성했을 땐 부단히 노력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소박하게 살았지만, 먹고 살려고 했던 일이 안겨준 병은 훗날 자신과 가족에게 큰 근심을 줬다. 

하루 하루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웃으며 나이드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손가락으로 세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계산하다 관뒀다는 아빠의 말은 아직도 마음에서 윙윙 거린다.
지금부터 아빠가 가진 시간들에선 따뜻한 온기가 계속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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