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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다온아 안녕?

2017/07/06

2017년 3월 19일 밤 11시 22분, 
아들 다온이가 3.27kg으로 우리 품에 왔다. 

글을 쓰는 지금은 백일을 넘긴 때라 3개월 전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난 진작에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로만 수십번을 썼다 지웠다 했나보다. 
하.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까.

다온이는 예정일보다 정확히 일주일 먼저 태어났다.
태어난 19일 전부터 며칠간 규칙적인 가진통이 있던 터라 엄청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 이슬이 비치길래 이제 시작이구나 마음이 바빠졌다.
절대 보지 말라는 출산 후기들을 매일같이 정독해서 당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미친듯이 쏟아지는 양수 앞에서 나는 한방에 무너졌다.
내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양수가 샜다’는 상황은, 지금 이게 양수인..가? 할 정도로 느낌이 없다고 했었는데. 나는. 나는. 나는말야. 진짜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어서 나오는 물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다니는 속도와 엄청난 양으로, 그야말로 ‘쏟아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화장실은 작은방과 마주하고 있는데, 너무 놀란 내가 “오빠악!!! 야..야..양수각!!!!” 하고 고함을 내지르는 소리와 쏟아지는 양수 소리가 합쳐져 자고 있던 오빠에게 엄청난 위급상황을 전달하기에 적절했다. 

울상으로 병원에 도착할 때도 긴장만 됐지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바로 입원수속을 마치고 아 다온이가 이제 올건가봐. 룰루랄라 하고 있을 때 쯤..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아픔이 느껴졌다. 3분 간격이었다. 그 때가 아침 10시. 
12시에 점심이 나왔지만 진통이 심해지는 것 같으니 허기를 달랠 정도로만 먹으라고 하신다. 나중에 토하면 안되니까. 근데 난. 먹는게 뭐야 아예 씹을 수도 없는 아픔이 느껴져서 남이 차려준 귀한 밥상을 내물렸다. 오빠는 못 먹는 내 앞에서 사 온 설농탕 한 그릇을 뚝딱했다. 그래, 얼마나 길어질 지 모르는데 오빠라도 배가 든든해야지. 

이미 아는 고통의 맛이었다면 그렇게 긴장하지도 않았을텐데, 세상 처음 겪는 고통 앞에 난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2시쯤 정말 2분마다 저 가시밭길 지옥불에 던졌다가 아주 잠시 쉬게 해주는 이 끔찍한 고통 구렁텅이가 미치도록 못 견디겠어서 무통을 미친듯이 외쳤다.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때 난, 제발 빨리요, 안아프게 해주세요, 잘못했어요(뭐가?), 고맙습니다, 제발요, 너무 아파요…를 수십 번 말한 것 같다. 
마취과 선생님이 등허리에 무통 주사를 꽂기 위한 작업을 해줬는데. 진짜 2분마다 배랑 허리가 잘려 나가는 고통에 움직이지 않고 마취가 끝날때까지 참는 그 시간에 다리가 덜덜 떨리고 무서웠다.
새언니가 첫째 때, 무통빨로 괴롭지 않게 낳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우리 다온이는 엄마 안힘들게 무통 상태에서 나와주겠거니. 정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천운을 빌고 있었던거다.

무통의 시간은 확실히 나를 행복하게 해줬다. 진짜 ‘무’다. 안아프다! 말도 안된다 진짜. 방금 전까지 눈 뒤집히며 아프다고 발악을 했는데. 다리가 뻐근하고 무거워지더니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내진은 괴로웠지만 진통을 쉴 수 있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무통빨은 3시간.
그렇다.
진짜 거짓말처럼 3시간을 채우자 난 또 괴물이 되었다.
그래서 한번 더를 외쳤다.
그래도 자궁이 열리지 않아 한번 더.
시간은 입원 12시간을 채운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장사를 마친 엄마가 병원으로 왔다. 그때까진 무통빨이 몇 분 남아있어서 웃는 얼굴로 엄마아~ 할 수 있었다. 
무통 주사바늘을 꼽고 짐볼을 진짜 미친년 널 뛰듯이 2시간을 뛰었더니 어지럽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제발 이제 낳고싶다는 생각만 차올랐다.
그리고 또 거짓말같은 시간이 지나 진진통 지옥불에 던져진 시간. 
그 때부터 40분동안 엄마도 차마 볼 수 없는 미친 진통에 스트레스성 천식까지 도져서 호흡기를 끼고 기절 직전에 간호사 세명이 배 위에 올라타서 나와라 나와라 눌러댔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을만큼 괴롭고, 오른쪽 허리랑 골반을 드릴로 뚫는 기분이었다. 

오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 낳는게 힘들고 아프다는 건 알았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지옥같은 40분을 이겨내고 다온이를 세상에 나오게 한 나 스스로를 너무나 추켜 세워주고 싶다.
출산 후에 미 경험자들의 얼마나 아팠냐, 어떻게 힘들었냐, 그렇게 죽겠더냐. 등의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이렇게 죽을바엔 안락사를 시켜주세요. 라고 말하겠어’.
물론 그 때 그 상황의 극한 표현이다. 

만일 출산 직후에 이 글을 썼다면. 이보다 더 길게, 자세하게 고통에 대한 묘사를 충분히 이어갔을텐데. 그냥 그만할란다. 
기억을 떠올리려 할 수록 어둑하고 차가웠던 느낌의 분만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여튼, 극한 상황에서 억지로 밀어낸 다온이 머리가 나왔고. 어깨는 내 힘으로 빼야한다고 해서 진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실하게 간절하게 빌면서 시키는대로 힘을 줬다.
오빠가 고생했다고 훌쩍거리면서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고통이 사라졌다. 울음소리가 약해서 나온지도 몰랐는데,  따뜻하고 까맣고 작고 물컹한 무언가가 내 가슴에 얹혀졌다.
우리 다온이였다. 14시간만에 드디어 나와줬다. 얼마나 힘들었니 우리 아가. 
품은 열달동안 항상 상상했던 순간인데, 그에 비해 상황은 너무 순식간에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너무 지친 나는 다온아. 다온아.. 어떻게.. 이 말 밖에 못해줬다. 오빠랑 연습까지 했었는데. ‘다온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호흡이 불규칙했던 다온이는 빠르게 신생아실로 갔고, 후처치가 시작된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기가 나오고 난 후 몸 속의 태반이 저절로 나와야 하는데. 난 태반유착으로 의사가 직접 손을 넣어 뜯어내야 한다고 했다. 출산교실에서 들었던 상황인데, 그게 설마 나겠어? 하는 마음에 집중하지 않았었다. 근데 그게 나였다. 젠장. 
일요일이라 담당 여의사가 아닌 생전 처음 본 남자 의사가 내 앞에 있었다. 한숨을 쉬고 긴장된 표정으로 나한테 설명을 해주셨다. 
태반유착으로 인한 합병증이 올 수 있으며 불가피하게 손을 넣어 떼야 한다고. 정말 아플거라고 했다. 얼마나 아프겠어. 난 애도 낳았는데. 
아프다는 말 말고 다른 거 없나? 손으로 태반을 뜯어내던 순간, 진심으로 다온이가 나올때보다 더 아팠다.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아무 죄 없는 의사를 미치도록 미워했다. 

드디어. 후처치가 모두 끝나고 입원실로 올라갔는데. 우리 아들 소식이 없다. 
오빠랑 엄마가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됐고, 다온이 봤냐 건강하냐 묻는 말에 시원찮은 대답을 한다.
나온지 몇시간이 지났는데도 호흡이 불안정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 내 잘못같았다.
숨을 잘 못쉬어서, 힘을 제대로 못줘서, 시간을 오래 끌어서 너무 힘들었나. 정말 너무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는데도 잠도 안오고 배도 안고프고 다시 괴로웠다.
새벽4시까지 호흡이 안돌아오면 대학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그 시간이 너무 지옥같았다. 난 아직 얼굴도 못봤는데..
입원실에 셋이 따로 누워있었는데 아무 말 없이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3시쯤 전화가 왔다. 괜찮아졌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피로가 몰려와서 기절한 듯 몇 시간 잤다.

 

태어나자 마자 오빠가 찍은 다온이. 지금 보니 창백하다. 원래 갓 태어난 아가들은 온 얼굴과 몸이 빨갛다. 호흡이 불안정해서 창백했던 것도 모르고 우리는 날 닮아 하얗다고 좋아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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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시간마다 가서 보고싶고, 당장 안아서 모유를 주고싶고, 모자동실을 신청해서 옆에 두고 싶었는데.
입원해있던 3일동안 딱 2번 면회가서 본게 다였다. 
태반을 억지로 떼어내서 빈혈수치도 너무 높아 모유를 바로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앉기도 힘들정도로 어지러워서 마음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나 남들처럼 모유가 신나게 돌지도 않고, 조리원에서도 영혼을 다해 유축해도 40ml를 넘기지 못해서 항상 분유로 보충을 했었다. 
그 덩치에 젖이 안나오냐, 애는 모유를 먹어야 잘 큰다, 이걸 먹어봐라, 저렇게 해 봐라, 이래라 저래라 이렇냐 저렇냐 말을 많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어쩌라는 건지, 진짜 그 모유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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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달 뒤에 모유를 끊고 분유로 돌아섰다. 
잘 큰다.
아프지도 않고 쑥쑥 아주 잘 큰다. 
그러니 주위에 젖이 안돌아 모유를 줄 수 없는 엄마에게 그놈의 ‘젖 걱정’ 얘기는 절대 꺼내지 말도록 하자.

병원과 조리원에 있을 때 다온이 사진을 보니 참 웃음이 난다. 
몸이 너무 힘들다고, 나 괴롭다고, 다칠까 무섭다고 다온이를 안기 꺼려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내 자신이 용서가 안되는 후회스러운 시간.
미안해 다온아. 
너무 예쁜 우리 다온이. 
엄마 아빠 믿고 이 험한 세상에 나와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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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이 면회왔을 때, 요렇게 예쁘게 눈을 뜨고 있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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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도 조리원은 정말 천국이었다.
막상 그 안에 있을땐 쉬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힘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쳇, 애송이였어. 그 뒤에 집에서 일어날 일은 상상도 못하고 말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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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만해도 철썩같이 오빠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은 누가봐도 나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헤헿.
고럼 고럼, 내 배 아파 낳았는데 날 하나도 안 닮으면 서운해서 어디 살겠니? 

아, 백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만 난다.
조리원에서 집에 온 후 2주간 오빠랑 둘이서 잠 못자고 씨름했던 너무나 힘든 시간부터 
똥기저귀 못 갈겠다고 무서워하고, 트림시키다 토하면 울고, 30분마다 밥 찾는다고 괴로워하고, 밤에 제발 2시간이라도 잤으면 좋겠다고 흐느끼던 기억들.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들 웃는 모습에 힘든 시간들 기억들 모두 다 녹아 없어진다.
요 요 요 사랑스러운 내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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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니.
참, 백일의 기적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닌갑다.

 

다온아, 
아니 주환아. 
엄마랑 내일도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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