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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2013/05/20

천명관 저

 

영화로 나와 더 유명해 진 장편 소설 ‘고령화 가족’.

제목 그대로 장성하여 뿔뿔히 흩어져 있던 자식들이 집으로 하나 둘 모여 들어와
복닥대며 부딪히는 웃지 못할 이야기 이다.

 

고령화가족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출생의 비밀부터 엄마의 비밀까지,
이 집구석은 정말 각각 다른 방식의 사연들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번듯하게 대학까지 보내 놓은 유일한 학사 둘째는 실패한 영화 감독으로 찍혀 자살을 생각하고,
그 와중에 ‘닭 죽’ 먹으라는 엄마의 전화에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도 접고 곧장 집으로 향한다.
씻지도 않은 손으로 닭다리를 뜯고 닭죽을 퍼 먹으며 생각한다. 여기서 살면 되겠다고.

순간 무슨 사연인지 지극하게 얽히고 섥혀 말도 섞기 싫은 큰 형 오함마가 등장하고
여기서 살고 있다는 말에 죽기보다 싫지만, 나가면 죽어야 하는 인생이기에 참고 산다.

셋 째 딸 미연이.
이번이 세 번 째인 결혼을 하겠다고 이혼하고 집에 들어와 산단다.
이름이 뭔지 기억도 안나는 중학생 딸내미까지 같이.
예쁘장한 얼굴 덕에 남자들한테 인기 꽤나 있는 건 알겠는데, 이혼을 밥 먹듯 하는 건 오빠로써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로 마주해도 머리 아픈 자식들인데,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표현되기를 엄마는 자식들이 엥엥대고 싸우고 대책 없이 구는 데도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고 오히려 날로 얼굴이 좋아지기 까지 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 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나는 엄마의 슬쓸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부서진 희망 같은 걸 감지했다.
그런데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또다시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무겁고 숙연한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여자의 인생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인가?”

 

여자의 뒷모습

실패한 영화 감독 둘째 아들의 시각으로 소개되는 고령화 가족의 가정사는
너무 우울하기도 어둡기도 하지만 결국엔 ‘가족’이라는 고유명사 아래 이해관계가 성립되고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도 따뜻한 밥 한 끼 둘러 앉아 먹으며 웃는다.

비밀은 주로, 고기를 굽고 또 굽는 식사 시간에 밝혀진다.

알고 보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형 오함마,
엄마가 사라진 1년간의 비밀 속에 태어난 동생 미연이,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갈등 사이에 있었던 전파사 아저씨.

이 이상 콩가루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어찌할까 우리가 가족인데. 하는 뉘앙스로 소설도 영화도 다시 일상을 사는 가족의 모습으로 돌려 보낸다.

 

가족이니까.
이 세상에 댈 수 있는 어떤 이유보다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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