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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2013/06/07

무라카미하루키 / 권남희 옮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라디오는 <앙앙anan>이라는 연재 에세이에 실렸던 50편 정도를 모아 출간한 책으로 세 번째가 마지막 판이다.

이모의 영향이 크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키의 책을 곧잘 읽었다.
대부분 읽다 보니 다 읽게 된 경우였던 것 같은데 스펙타클한 스토리나 엄청나게 파고들어야 하는 긴장감, 이해력 없이 흘러가는 독서를 도와주는 편안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소설을 읽다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가 나왔을 때 너무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마치 그 사람의 일기를 키득 거리며 함박웃음 짓고 보는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에.

연재에 대한 부담은 마감과 직결될 터인데, 하루키는 미리 한 달 치의 주제를 정해 놓고 글을 써 내려 가기에 이번엔 뭘 쓰나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이 줄어 무리없이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주제도 얼마나 다양하고 잡식인지 좋아하는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식습관, 음식, 가방, 음반, 발명품, 기억, 추억, 사랑… 어쩜 이렇게 많은 생각을 머리에 집어 넣고 살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풀어 내기 위해 알고 있는 지식, 상식이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기도.

종이를 홀홀 넘기며 커피를 홀홀 마시며 웃으면서 생각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두어장 정도 되는 에세이 마지막 단에 하루키의 어투로 적힌 ‘잡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아서 이기도, 뜬금없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어서 이기도 한데 하루키도 이런 생각을? 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어 반갑기도 하다.

언제나 하루키의 신간을 제일 먼저 만나보게 해 주는 이모에게 감사를 전하며!
한 편 소개.

 

즐거운 철인3종 경기

 철인3종 경기를 해본 적 있으신지? 음, 수영과 자전거와 달리기를 연달아 하는 그거. 나는 해마다 한 차례 경기에 나간다. 한번 시작하면 그 재미에 중독되게 마련이다. “그런 게 재미있을 리 없어” 라는 중얼거림이 저쪽 어디서 들려오는 것 같지만.
 호놀룰루에서 매년 5월경에 열리는 호놀룰루 철인3종 경기에도 몇 번 출장한 적이 있다. 이 경기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바다가 따뜻해서 수영할 때 고무 잠수복을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맨몸으로 바다에 확 뛰어들어 헤엄쳐 돌아와서는 그대로 자전거에 올라타면 된다. 이러한 점이 정말로 좋다. 고무 잠수복을 입고 벗기란 실제로 해보면 상당히 귀찮다. 섹스로 말하자면…… 아니, 이건 그만두자.

 반대로 이 대회에서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종아리에 펠트펜으로 나이를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59세라면 ’59’라고 꺼멓게 자백을 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 걸까? 남자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지만 여성 중에는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한편 나보다 젊은 사람을 마지막 달리기에서 추월하는 것은 나름대로 기분좋은 일이다. 요전에 종아리에 36이라고 쓴 사람을 추월했더니 “어이, 잠깐만, 59, 당신 정말로 쉰아홉 살 맞아요? 거짓말이죠? 어떻게 59가 36을 추월할 수 있느냐고요” 하면서 한참동안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거참, 시끄럽네. 그런 건 나이 문제가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걸 말로 했다간 싸움이 될 테니 물론 입밖에 내지 않았다.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든 다음 그대로 뛰어가버렸다.
 반대로 72라는 번호를 쓴 사람을 추월할 때는 “힘내세요”하고 말을 건넨다. 나도 72세 정도까지는 철인3종 경기에 현역으로 참가 하고 싶다.

 내가 마라톤에 나가게 된 것은 삼십대 초반으로 그 무렵은 나이별 스타트에서는 앞쪽이었다. 아직 젊었던 셈이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뒤쪽으로 밀려나 지금은 드디어 제일 마지막 줄이 돼버렸다. 그래서 출발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터라 그동안 찬바람을 맞고 있어야만 한다. 너무하지 않은가, 경로우대 정신 좀 가지라고 하고 싶지만, 뭐 대회 운영상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마라톤이나 철인3종 경기 전날, 옷을 챙기고 출전번호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신발 끈을 다시 묶는 등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설레고 즐겁다. 마치 소풍 전날의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다.
 나이 먹는 것을 여러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건방진 소리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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