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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1)

2011/06/29

써니, 난 두 말할 거 없이 ★★★★★

 써니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는 디폴트요 박장대소는 옵션으로 끼고 눈물 줄줄 흘리면서 봤네.
뻔한 스토리일거야, 비디오로 나오면 보지 뭐 하고 여유부리다 막장에 빵 터진 케이스.

그냥 그 시대의 시대상, 정치상황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은 점, 한국영화의 특성답게 끝엔 결국 재물로 통한다..라는 용두사미식으로 접는 시나리오 등등등…은 싸그리 무시하고 싶다.

그저 영화를 보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은 들썩들썩, 흥얼흥얼. 언젠가 엄마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나와 반가웠고,
80년대 중반 여고생의 이야기가 10년 전 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느꼈고,
판타지장르의 흐름 속에서 ‘나미’가 현재를 살아가며 지난 날을 추억하는 장면에선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나와 예전 기억 속의 내가 오버랩되며 떠올릴만한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새로 전학 온 나미가 신고식 비슷하게 치뤘던 ‘벌교.st 욕다바리’부터 시작해서, 눈물 콧물 짰던 회동장면에 마지막 장례식장에서의 춤사위까지. 특히 벌교 욕다발에선 발을 동동구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진짜 허벌라게 웃기더만.

 

 써니2

 

아, 친구들이 생각난다.
우리도 이름이 있었는데, 좀 그렇지만. ‘추녀(가을 秋, 계집女)’다. 뭐 말그대로 가을여자.ㅋㅋ
써니의 칠공주는 7명이라는 구색이라도 맞았지만, 우린 왜 추녀였지 생각해보면 정말 초단순.

교복만 입던 우리는 생일이랍시고 특별히 저녁에 사복을 챙겨입고 나왔다.
그중 키가 크고 우리의 마스코트로 인정받았던 젤팔이가 입었던 옷이 ‘갈색 바바리’였다. 걸릴까봐 교복차림에선 말끔히 숨겼던 나이야가라 빠마에 가을 바바리 차림에,양손은 건들거리게 푹 찔러넣은 모습은…….단방에 우리 모두가 ‘추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우린…하나니까…………

암튼, 그때 우리들 싸이 사진첩 이름은 다 ‘추녀’다. 가을여자인 동시에 진짜 추한 여자들의 추…를 적용할 때도 많아서.ㅋㅋ
써니의 칠공주처럼 치고박고 극한의 상황까지 간 경우는 없지만,
입에 담기도 민망한 얘기들로 뒹굴고 웃고 싸우고, 놀 땐 격하게 공부는……모르겠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 때의 최고 이슈였고, 낙이였고 고민이기도 했다.
고3 월드컵땐, 야자 땡땡이치고 책상 숨기고 시청으로 뛰어나와 새벽까지 정신나가 놀고, 철 없던 남자이야기에 밤 새 이야기하고.아 무궁무진해.
지금도 그 때 얘기들이 나오면 별 것도 아닌데 서로 웃고 흉내내고 10년 전 그 때 그 날이 된 것같이 즐겁다.

지금은 벌써 두 명이 결혼해서 이쁜 애기도 낳고, 살만한 가정을 꾸렸고,
아직 외국을 돌아다니며 삶의 수행을 하는 친구도 있고,
한 남자에 정착하지 못하던 자유분방 두목 아이는 이제 제대로 남자를 만난 것 같고…
만년 회사생활에 평범함의 극에 달하는 삶을 사는 난 여전히 그 때 그대로인 것 같고.

글쎄,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지금을 살아가는 중의 선물이 된다고 하던데.
‘써니’를 보면서 간간히 떠올렸던 순간들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처럼 매일같이 보던 사이도, 한 두마디에 삐지지도, 하루가 다르게 싸우고 화해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모여서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새삼 든든하다.
(아, 또 영화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져 허우적…)

친구들

 벌써 2년전이네, ‘추녀’ 이름에 한몫 한 젤팔이 국제결혼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