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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2017/08/26맑음

예상은 했지만.
인스타고 블로그고 뭐고 내가 없고 주환이 얘기가 그득하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주환이가 곧 내 이야기가 되는 시점이 온거라고 생각하면 좋은데.
자기 전 사진첩을 보다가도, 검색 내역이나 앱 실행 내역을 보다 보면 죄다 주환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기가 잠든 시간부터 너무 우울하다.
‘우울하다’는 단어를 입밖에 내기도 싫지만,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할만한 최선의 말이 없다. 
사회에서는 출산 후 우울증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말하고 주의를 주며 너만 힘든 것이 아니고 그렇게 우울한 것도 정상 범위 중 하나라도 단정한다. 
그러기에 남편이나 부모님이나 친구, 지인들은 애를 낳은지 얼마 안된 엄마들은 모두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위로해준다. 
하지만 보고 있기도 아깝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는데도 문득 찾아오는 이 감정을 정상이라고 판단하기엔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나보다 더 전투적으로 주환이에게 시간을 쏟는데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라고 배려해 주는데도, (여기서도 배려 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을 찾아 쓰고 싶지만. 그냥 이렇게 쓰련다.) 아기가 잠들고 최소한의 불빛만 남겨진 어두운 집에 앉아있으면 서서히 내가 증발해버린 기분이 든다. 이제 아기가 잠들었으니 나는 필요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낮이든 밤이든 아기가 잠을 자는 순간부터 엄마의 시간이라고들 한다.
옆에서 잠을 자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계획한 다른 일들을 하거나. 
틈틈히 무언가를 하다보면 당연히 집중을 할 수 없고 머리는 복잡하고 정신이 없거니와 나중에, 나중에 다 끝내야지. 로 미뤄져 버린다.
마음만 바쁘고 제대로 끝낸 일이 없다보니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분마다 시마다 모인 짜증들은 아기에게 가기도 하고 어두운 시간에 눈물로 터지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엄마의 당연한 감정이라고 여기고 이 감정이 매일, 매달, 매년 쌓이다 보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당연한 건가. 

 

나는 남들과 비교하자면, 육아에 굉장히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나와 남편은 개인사업자로 함께 일을 하고 있고, 아기를 낳고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재택근무를 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도가 있기에 둘 중 여유가 되는 사람이 아기를 보고 다른 한명은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하루에 6,7시간 정도 아기를 보고, 남편이 할 일이 끝나면 날 무조건 밖에 나가게 한다. 단 10분이라도 바람을 쐬고 오라고 내보낸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지만 못이긴 척 나가 카페에 1시간씩 앉아있다 온다.
그렇다.
남편이 굉장히 바쁜 시기엔 당연히 내가 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한다.
그럴 땐 아침잠이라도 조금 더 자라고 새벽까지 밤을 새고 일하던 남편이 첫수를 해주고 잔다.
그렇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아니, 누가 봐도 난 전투육아, 힘든육아 카테고리엔 속하지 않은 행복한 육아를 하고 있다.
근데 웃기게도 난 요즘도 거의 매일 밤마다 힘들다고 우울하다고 남편 앞에서 운다. 
육아하기 좋은 환경이 주어졌으니 늘 웃으며 행복하게 육아를 해야 하는건가.
당연한 건가. 

사실 주환이를 낳고 지금까지 가장 고맙고 미안한 사람은 우리 남편이다.
종일 내 옆에서 모든 짜증을 다 받아내주는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는데도, 
당장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을 알고 하루에 서너시간은 집중해서 일을 하라고 밖으로 쫓아내는 현명한 사람이다.

내가 지금 남편을 칭찬하려고 이 글을 쓰는게 아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란 사람들은 무수히 복잡한 감정과 약해빠진 체력에서 오는 온갖 통증을 달고 주어진 시간마다 고민과 우울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물론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미치게 달달한 행복감과 진짜 미치고싶게 괴로운 감정이 매 순간 함께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묻는다면,
그냥 이게 당연한건가 싶게 산다고 말한다. 
이러다 나아지겠지, 이러면서 나를 찾아가겠지.

이런 마음을 들어주고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거라 열불내며 말해주는 남편한테 오늘도 고맙다.
아빠는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해주는 모습도 고맙다. 
주환아, 커서 아빠한테 잘해야돼.
엄마보다 아빠가 너 분유 더 많이 줬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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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나는 어쩌자고 이딴 글을 쓰는지. ㅋㅋ 

 

댓글 1

  • 피곰2018-01-16 14:14

    힝…미송님 우울해하지 말아용~ 근데 정말 ..남편분은 멋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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