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샤프심 먹는 친구

2020/03/17

정확하진 않지만 8, 9살 정도였던 것 같다.

학교 친구는 아닌 것 같고 골목에서 놀던 친구인데
어쩌다 집에 같이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해가 들지도 않는 반지하라 남의 집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내 기억에 그 친구 집은 불을 켜도 컴컴한, 동굴 같았다.

집엔 아무도 없었고 우린 공기놀이를 했다.
의식적으로 바닥에 살이 닿지 않으려고 움츠려 앉았던 것 같다.
그런 세세한 기억까지 남아있다니 소름이다.

단발머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다니던 친구는
너무나 말라서 아이 주제에 밥은 잘  먹는 거냐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얼굴은 날렵하고 예쁘게 생겼던 것 같은데 말이 없고 웃을 때 항상 입을 가렸다.

얼마나 됐을까. 이제 더 할 것도 없고 밖이 어두워졌는지 문을 열고 보고 있었다.
친구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얼굴을 조금만 돌려도 집에 뭐가 있는지 알 만한 단칸방이어서
이 집엔 내가 먹을 건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티비 옆에 있던 하얀 통을 들고 오더니 휴지를 깔고 그 위에 툭툭. 너도 먹어봐 맛있어.

맛소금이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찍어 혀에 가져다 대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맛있다를 반복한다.
설마 저게 맛있겠어. 따라서 먹어봤는데 웬걸, 처음엔 톡 쏘는 짠맛만 돌았는데 침을 삼키니 끝 맛이 달았다.
엄마 오기 전에 배고프면 먹는다고. 엄마 앞에서 먹으면 혼난다고 했다.

이제 정말 가야 할 것 같아. 공기를 주섬주섬 챙기는 데 친구가 옆에서 뭘 주워 먹는다.
손에는 샤프를 들고.
또깍또깍 샤프에서 나오는 심을 휴지 위에 놓고 분지른다.

샤프심을 먹고 있었다.

 

그 다음 기억은 없다.
그 친구네 집에 다시 놀러 간 기억도 없다.
저걸 먹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몇 걸음 안되는 거리를 뛰어 집으로 갔던 것 같다.

잘 가라고 웃으며 인사할 때 친구의 혓바닥이 시커멓던 것도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