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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집

2020/03/20

이름은 탐라 였다.

탐나 였나?
탐라도의 탐라인지
탐나다의 탐나인지
아직도 헛갈리지만, 어린 마음에도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을 다니던 때니 5살쯤 이었던 것 같고,
이층집 아이 탐라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화장실을 가려면 밖으로 나와 이층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가야 했다.
그 때 사진을 보면 유독 화장실 앞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데
혼자 가기 무서우니 늘 오빠랑 같이 갔고 때마다 엄마는 카메라로 우리를 찍었던 것 같다.
푸세식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쪼그리고 앉아 웃는 사진은 지금 봐도 너무 웃프다.

마당도 넓고 조그마한 분수와 수돗가도 있어서 여름엔 늘 나와서 놀았다.
풍선에 물을 담아 이리 저리 뿌리고 장난치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탐라는 위로, 나는 구석진 길 안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한번은 놀다가 화장실에 간다며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화장실은 여기 있는데 왜 집으로 들어가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늘 같이 놀면서도 나는 그 집의 현관문까지만 발을 들일 수 있었는데
어쩌다 한 번 열린 문을 통해 봤던 광경은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집이 하나인데, 탐라네는 집이 많다고 놀라 얘기했단다.
집이 아니라 방이겠지. 당시 단칸방 옆에 부엌이 딸린 조그마한 집에 우리 식구와 막내이모까지 살았으니 합이 5명 이었는데
탐라는 엄마, 아빠하고만 산다고 해서 그럼 나도 그 집에 살겠다고 허락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 다음 집도 주인은 이층집에 살았다.
창이 있는 방에서도 앉으나 서나 보이는 것은 사람 머리 뿐이었는데
반지하 낮은 담장 위로 이층집 오빠가 지나갈 때면 공룡이 지나가는 것 처럼 크게 보였다.

엊그제 그 반지하 집에서 찍은 홈비디오를 봤다.
막내 이모부가 열을 다하여 찍은 것으로, 그 좁은 집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척의 얼굴이 반가웠고
귀여운 꼬마 동생들이 벌써 서른 가까이 되었다니 흐른 세월에 감탄도 했고
너무 잘생겨서 놀란 아빠의 젊을 때를 보며 울컥하기도 했다.

이층집 주인이 있는 집은 그 집이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그 집에 살 때 매년 보험왕을 쓸어 왔었고
아빠는 매일 일이 있어 새벽에 나가거나 지방 출장이 잦았었다.
오빠는 서태지가 은퇴한다며 눈물 한 방울을 흘렸고
나는 HOT 오빠들과 결혼한다며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꾸며댔다.

그 때의 엄마, 아빠, 오빠, 나는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