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 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 프레임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물들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우리가 프레임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부터 눈에 많이 보이던 책이긴 했지만 손에 잡히진 않아 두고 나서 이제야 본 책. 2시간만에 집중하여 완독했다.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꺼내어 놓고 비교하며 측정하고 그랬구나 인지하는 시간들이어서 흥미롭게 넘겼던 것 같다.
저자는 나와 우리, 세상과 현재, 변화 등 여러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심리적으로 빗대어 ‘당신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행동하는가? 그 행동의 결과는 어떠했나?’ 질문을 던진다. 마케팅, 브랜딩에 접목되는 이야기는 물론 내가 살아 온 인생 속에 이미 일어난 결과에 대한 이유, 살아 갈 인생에서 가지고 가야 할 메시지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과거에, 앞으로 어떤 프레임을 두고 상황을 바라보고, 바라보았고, 바라 볼 것 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무언가 시원하게 정화된 느낌을 받았다.
자기 중심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상대를 마주한 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 처럼, 내가 정의한 대로만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의 모든 것이 ‘맞다’ 라고 생각하는 착각의 안경부터 벗어 던지는 게 좋다. 사람을 예로 들긴 했지만, 착각의 안경이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이나 일과도 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겄다.
‘삶의 상황들은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그 상황에 대한 프레임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더 나아가 최선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성의 최후 보루이자 도덕적 의무다.
이 외 읽으면서 귀를 접었던 페이지를 간단히 써 본다. 소장해도 좋을만한 책이니, 자세한 내용은 ‘프레임’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것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했던 헤르만 헤세의 언어를 빌려 행복한 사람은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단순히, 대충, 그냥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보다 상위 수준 이라고 말한다.
상위 프레임에서는 Why를 묻지만 하위 프레임에서는 How를 묻는다. 상위 프레임은 왜 이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의미, 목표를 묻고 비전과 이상을 세운다. 그에 반해 하위 수준의 프레임에서는 그 일을 하기가 쉬운지 어려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 구체적인 절차부터 묻는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나 큰 그림을 놓치고 항상 주변머리의 이슈들을 좇느라 에너지를 허비하고 만다.
예상된 결론이었겠지만, 우리에게 동일한 사건을 두고 구체적인 수준에서부터 추상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프레임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여기서 어떤 수준의 프레임을 선택하는지가 행복과 의미 추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펩시가 코카콜라를 이긴 힘
펩시와 코카콜란 간의 ‘콜라 전쟁’에서 펩시를 승리로 이끌었던 존 스컬리의 프레임 이야기 이다. 입사 초기 펩시가 코카콜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코카콜라 병보다 더 세련된 병을 디자인하는 것’뿐이라고 프레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음에도 결과는 역부족 이었다. 그 때 스컬리는 병을 더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펩시콜라를 더 많이 마시도록 유도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펩시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프레임하기 시작한다.
스컬리는 대규모의 소비자 조사를 수행한 결과, 소비자들은 콜라 병의 크기나 양에 상관없이 일단 집으로 사들고 가면 버리지 않고 다 마신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발견했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콜라를 사고 나면 다 마신다는 것. 이 점에 착안하여 펩시 병을 코카콜라보다 더 크게 만들었고, 집으로 들고 가기 편하게 다양한 크기의 패키지 상품들을 내놓았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던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만일 펩시가 자사의 문제를 계속해서 ‘콜라병의 디자인’이라고 프레임했더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쾌거였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프레임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작가가 작품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가 사진기의 성능에 있다기 보다 ‘멋진 장면’을 포착하지 못한 데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미지 투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버릇이 있다. 타인을 능력 차원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도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을 중시하는 사람은 그 10명의 사람을 돈으로 평가할 것이고, 날씬한 몸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들을 몸매로 평가할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저 사람은 집이 있을 것 같아’, ‘아파트가 저렇게 많은데 왜 우리 집은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평가나 내용들을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기보다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많이 드러낸다. 지금 주변에 남을 헐뜯는 사람이 많은지,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지 둘러 보라. 끊어야 할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자기 프레임을 과도하게 쓰다 보면 ‘나는 남들을 잘 알고 있는데 남들은 나를 잘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신은 결코 치우침 없이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오해받고 왜곡당하고 있지만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이건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미신일 뿐이다. 정답은 ‘나는 네가 나를 아는 정도만 너를 안다’ 이다.
지은이의 글에서 저자는 ‘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소개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 이것이 지혜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내가 직면하는 프레임으로 마음의 한계를 마주할 때 경험하게 되는 겸손이 쌓여 지금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