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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2010/09/07

모리 에토 / 김난주 옮김

 

내가 나이면서 나이기 위해, 또는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지켜내야 하는 기준. 이 기준을 지켜내려 애쓰는 삶과 개인이 종내는 얼마나 풍요롭고 꿋꿋하며 또 아름답고 감동적인 가치를 일궈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의 말-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애인과 히로미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하겠지만, 애인과 히로미의 케이크를 저울질하면 어쩔 수 없이 후자로 기울고 만다. 야요이에게 히로미의 케이크는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새로운 기적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야요이는 애인이 불쾌하게 생각하든 철야 작업으로 몸이 너덜너덜해져 수명이 단축되든 상관없었다. – 본문, 그릇을 찾아서 中 – ‘그릇을 찾아서’ 에서 오로지 달콤한 케잌을 기준으로 삼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야요이. 애인도 이해하지 못할만큼의 케잌에 대한 열정은 야요이가 작은 케잌을 담을 ‘그릇을 찾아서’ 시간과 돈과 생각을 투자하는 데서 엿볼 수 있었다.  

—–  

나는 지금까지, 나하고는 무관하다고 외면하면 그만인 누군가와 어떤 일을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이 있던가?
– 본문, 강아지 산책 中 –  

별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추고 노트에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예전에 ‘타인의 고통’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나는 그들의 삶을 바라만 볼 것인가, 마음으로라도 함께 참여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났다. 강아지에 대한 애정을 나오미가 가장 좋아하던 특별한 소고기덮밥에 비유했던, 강아지의 사료를 사기 위해 밤과 낮이 바뀌는 일을 선택한 나오미. 나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어떤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의 방향과 생각을 바꿔가면서까지 함께 참여하며 겪어 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걸까.
나의 소고기덮밥은 무엇인가?  

—–  

“타인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결혼하지.”  

오로지 한 가정에 메여있을 수 없는 에드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리카. 결혼만 하면 에드와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는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소녀를 구하기 위해 총부리 앞에 등을 들이댄 UNHCR의 전문 직원 에드는 오직 바람에 날려 힘없이 이리저리 오가는 비닐 시트 같은 나약한 목숨에 대한 연민, 지구상에서 하루도 끊이지 않는 숱한 전쟁의 산물인 난민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되었다. 일의 특성상 해외로의 잦은 출장과 길어지는 일정..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열망과 욕구는 넘쳐나지만 조금이라도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면 예상되는 결과를 무시하진 않았을 거 같다.

“기다리지 않아도 돼, 리카. 당신에게는 당신의 인생이 있어.”
“그럼 당신에게는 당신의 인생이 있고? 틀렸어, 에드. 부부는 한 인생을 끝까지 함께하는 거라고.”
서로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리카는 에드를 가정이라는 따스한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용트림을 했고, 에드는 리카를 그런 가정에서 바깥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끌어내려고 용기를 낸 것이니까. 
– 본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中 –  

결국 약하디 약한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같은 목숨) 존재를 감싸며 죽음을 맞이한 에드를 떠올리고 현장으로의 파견을 결심한 리카의 진정성은 마지막에 예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평화는 이렇듯 아름답다. 이렇듯 멋지다. 아무쪼록 이 아름다움이, 이 멋짐이 영원토록 계속되기를.
그들이 깔고 앉아 있는 비닐 시트가 대지에 단단히 붙박여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에도 휘날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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