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 공경희 옮김
Absent in the Spring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늘 자신있고 당당함으로 무장한, 자기만족에 사는 여인 조앤.
완전한 고요와 고립 속에서 묻혔던 생각을 하나 둘 씩 꺼내게 된다.
자기만족에 빠진 딱한 영혼에게 닥친 의심의 칼날과 알고싶지 않은 마음의 소리들.
어떤 내용일지 생각도 못한 참에 펼쳤다가 다 읽기도 전에 몇 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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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세상이 그런 거지. 붙어 있어야 할 때는 그만두고, 내버려두어야 할 때는 매달리고.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 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 헤매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 그런데 그렇지가 않지 –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
조앤이 생각하는 인생, 혹은 그녀가 지금껏 알았던 인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었다.
그래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반응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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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로드니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픈 눈길로 오래도록.
사랑이 깃들었지만 절망감도 있었고, 그와는 또다른 뭔가도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희망이 슬쩍 번뜩인 것 같은……
“내가 행복해질지 당신이 어떻게 알지?” 로드니가 물었다.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두고보면 알아요.” 조앤은 재빨리 명랑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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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시간까지 앞으로 두 시간 남았다.
조앤은 인도인에게 한시에 점심식사를 하겠다고 말해뒀다. 조금 더 걸어도 좋을테지만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더구나 햇볕이 뜨거웠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얼마나 자주 바랐던가. 지금이 바로 그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떤 생각들을 그렇게 간절히 정리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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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그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만해.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
하지만 뭔가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는 뜻이다.
사실일 리 없었다.
그녀가 단순하게 내린 판단이 사실일 리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로드니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반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사실일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