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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인, 주인들

2025/11/18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우리집 영화의 다음 이야기로 어떤 걸 말할까 기대도 되었고
혼자 오롯이 이 시간을 품을 수 있다는 설렘에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평일 오후시간이라 그런지 나 포함 4명이 있었다.
영화에 몰입하면 할수록 혼자 이 감정을 받아쳐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밀려와서
내 옆, 내 앞자리도 사람들로 가득 차서 이 감정을 같이 공유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딱히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인데, 그렇다고 말을 안하고 싶은 것도 아닌 복잡한 심정으로 집중했다.
주인이가 지내는 일상적인 삶 속에 간간히 느껴지는, 견뎌내고 있는 찰나를 발견할 때마다 화가 났다.
시작부터 너무나 밝고 뭐든 알아서 잘 해내는 착실한 주인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 명랑함에 가두고 있는 아픔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 비극에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세계의 주인이 되어 살아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 까지 함께했다.

익명의 쪽지들을 받아내가며 혼란스러워하는 주인을 볼 때
스크린에서 아무 소리 없이 쪽지의 내용만을 그저 명확하게 보여주고 나에게 읽게 할 때
그 어떤 목소리나 연기보다 글씨를 통한 그 장면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가족들은 어떤가.
성폭력이라는 비극은 주인만을 폭격하는 아픔이 아니다.
부모와 남동생 각각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 주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 나가려하고
때론 각자의 방식대로 주인의 가족으로 살며 안아야 하는 상처를 덮어간다.

가장 눈물이 많이 났던 장면은 세차장과 마지막 쪽지를 읽어내려가는 장면이었다.
특히 세차장 씬은, 엄마는 어찌 저리 시종일관 건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을 대하는가 싶던 마음이 쿵 내려갔던 장면.
그 짧은 몇 분만에 그간 참고 견디던 고통과 악을 쏟아내는 주인을 모두 받아내고 한바퀴 더 돌까. 라고,
당연히 나는 너의 모든 악을 슬픔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있다 온 몸으로 말하는 엄마가 있다.
아, 오죽했을까. 엄마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위로와 공감과 분노를 함께 쌓아 왔었을까.

그리고 익명의 쪽지를 따라오며 내심 누가 보냈을까, 마지막에 밝혀지는 건가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쪽지의 주인들이 내용을 읽어내려갈 때
어떤 방식으로든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가 모두 만나는 것 같았다.

주인은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용기를 내고 있는 당당한 피해자임을 응원해주어야 한다.
그 비극의 상처를 마땅히 보듬어주는 것은 물론
평범한 일상의 평온이 가져다주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살아갈만한 세계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는 꼭, 세계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봤으면 좋겠다.
혹, 불편할지라도.
그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세계의 주인들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