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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2013/07/19

오늘로 1달 하고도 5일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쉰 날이.

어떻게 8시에 꼬박꼬박 일어나서 지옥철에 낑겨 타고 언덕길을 올라 출근을 했는지
12시간 넘게 궁디 붙이고 일하면서 몸에 좋지도 않은 커피를 달고 일을 했었는지
그렇게 일하고도 쏘다니겠다고 약속을 잡고 이 밤 내 밤 불사르겠다는 허풍을 떨었는지
도무지 지금의 체력과 정신으로는 내가 어떻게 그랬었나 되짚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 처음 며칠은 넘쳐 흐르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무조건 밖으로 나돌고 누구든 만나려 들고 시간의 빈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려고 애썼는데, 지금은 시간아 너는 가라 나는 머물란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

가끔 내가 이렇게 지내도 되는건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시래기같기도 하고 빨래건조대에 걸려 있는 옷걸이만도 못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지만 언제 쉬어 보겠어, 곧 예전처럼 아니 돈 메꾸려고 예전보다 더 죽자사자 일할텐데 뭐. 하고 말도 안되는 자기 합리화 하며 수박이나 썰어 마시면 그만.

요즘 자주 듣는 말. ‘부럽다 이년아’. 나도 바쁠 땐 백수가 부러웠다. 프리랜서는 더더욱. 
목적이 이직준비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정말 먹고 놀고 쉬는 것에 있기에 쉴 때 여행좀 가라, 자격증 따라, 뭐 해라 어쩌고 전혀 흔들리지 않고는 있지만 그래도 머리에 똥 말고 생각이 들어찬 인간인데 쉴 때 ‘무엇을 해야겠다’ 라는 걸 하나 만들고 내려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아마 이러다 내가 나를 못이겨 소리없이 일을 할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래 방치하면 더 부작용이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기에 큰 걱정이 안되는 것도 (짜증나지만) 인정. 

남의 돈 꼬박 받으며 일할 땐 ‘아! 하루에 세 번 열리는 서랍보다 더 못한 존재같아! 이것 말고도 더 잘할 수 있는게 있을텐데..’ 하며 탈출구를 찾아 이래저래 방황 하고, 팽팽 노는 백수가 되니 ‘그래도 꼬박 일하면서 가끔 방황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며 스스로를 불안해 하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탈이 더 짜릿하듯 아마도 난 지금 몸은 쉬지만 마음은 생각은 콩콩콩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게 맞는 것 같다.

인생은 30부터. (그냥 내가 지금 30이니까)
귀한 에너지 쓰며 머리 굴리고 일하는 곳인데 이왕이면 더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쇼부치고 싶다.
하고싶은 것을 이상으로 삼으면 백수의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지금껏 해 온 줄기를 계속 타야겠다는 작은 다짐과 함께.

마냥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쉬고 일하고 먹고 놀고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뭔가 바른생활 베껴 쓴 백수일기 같아서 민망하지만 간만의 글이니 그냥 업뎃.
그나저나 씀씀이 좀 줄여야 하는데 일할 때랑 똑같이 써제껴버리니 담달엔 굶어야 하나 싶다.

 

 

전체댓글수 2

  • 쇼천2013-07-22, 18:21

    히히,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난 오늘 핀란드 항공권 알아봤어. 8월 중순 즈음으로 예상 중 😀

    • 숑숑2013-07-23, 03:48

      하하하 ‘쇼천’ 이라고 떠서 먼저 빵 터지고 시작 ㅎㅎ 핀란드 드디어 현실이 되는구나. 고생 끝에 온 낙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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