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나와 하나. 아니, 우리와 하나.
늘어지게 엄마랑 소파에 안겨서 티비를 보다가 ‘유자식 상팔자’라는 프로그램에 꽂혀서 끝날 때까지 웃고 웃고 또 웃다가 급기야는 MC 손범수가 던진 말을 가지고 둘이 시간여행까지 하게 되었다.
‘나중에 나같은 자식을 낳고 싶다 / 낳기 싫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아이들에게 묻는 질문이었는데, 대부분 딸을 가진 부모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딸 같은 손주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이제 사춘기를 넘나드는 아들이 있는 집안은 표정으로 몸서리치며 제발 반대 성향의 손주가 나와 주었으면 한다고 하는데 신기한 건 각 아들 딸들의 생각이 똑같다는것.
결국 자기도 부모님에게 하는 갓가짓 행동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 아냐. 알면서 더 하는게 제일 얄밉지. 나도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이 웃긴 건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자식들의 말과 거기에 당황하는 부모의 반응 때문인데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말하지 않으면 서로 모르는 것들 투성이니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는 미묘한 감정이 자꾸 섞여가는 것 같다.
누구 아들이었더라, 엄마에게 들은 최고의 독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엄마가 요즘 하는 모든 말이요.” 라고 대답한 애가 있었는데 웃기면서도 짠하고 니가 진정 진격의 사춘기를 겪는구나 생각됐다. 그 찰나에 물어보는 엄마. “넌 언제 엄마한테 상처 받았어?” 짧은 순간에 촤라락 많은 게 지나갔지만 자고로 상처란 첫빠따에 받은 게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법. “엄마랑 나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옷을 사러 시장에 갔었는데 그때 주인 아줌마랑 마침 놀러와 눌러 앉은 아줌마들 앞에서 에휴, 이런 돼지가 어디서 나왔나 몰라요. 옷도 안맞으니 예뻐도 사줄 수도 없고. 이러는거야. 엄마가 입어보라는 옷을 입고 나왔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슬프고 화나고 입고 있던 옷을 다 찢어버리고 싶더라니까? 하하하.”
이제 지난 일이니 웃으며 쿨하게 말했지만 난 그 때 정말 큰 충격을 받고 이후로 밥을 안먹기도 하고 엄마가 있는 곳에서는 군것질도 안하고 훌라후프를 엄청 돌리기도 하면서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살집이 있던 건 맞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었는데 순간적으로 엄마가 나를 창피해 하는구나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이제 날 예뻐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조바심도 났었던 것 같다.
그랬었지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정말 집이 떠나가라 웃었다. “아 왜 웃어! 난 진짜 진지하게 상처받은 기억이라구!” 계속 웃으며 엄만, “세상에나 내가 그랬어? 어머 야 진짜 미안해. 아하하하하 근데 기억이 안나 어떻게 해 하하하. 왠일이니, 근데 니가 살이 좀 찌긴 했었지. 하하하 아 근데 왜이렇게 웃겨.”
역시 나의 깊은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 그저 지난 좁쌀같은 기억 중 일부도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 하더만 그말이 딱인 순간!!!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말로 행동으로 온몸으로 상처를 준 일이 너무나 많았을 테지만 찾아가서 사과를 할 만큼의 기억은 전혀 없다. 내게 상처를 받은 누군가는 이미송 으아으아 하며 이를 갈았을 지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좀 지나서 엄마가 물었다. “넌 너같은 딸 낳고 싶어?” 내가 대답한다. “그럼~ 나같으면 훌륭하지.” 엄마는 또 다시 웃는다. 그 다음 날 똑바로 보고 말한다. “그래, 딱 너같은 것 낳아서 한 번 키와바.”
뭐지.. 이 불안감은..
멀지 않은 나중에 토끼같은 자식들이 생긴다면 나를 인생의 큰 나무로 여겨 주었으면 한다.
힘들 땐 쉬어가고 필요하면 기대고 좋을 땐 함께 즐거워하고 엄마의 푸름을 지켜줄 줄도 알고 돌보아 줄 줄도 아는 고런 철 든 아가들. 부모 자식간의 대단한 인연의 끈을 서로가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건강한 아가들.
너무 멀리 갔나?
근데 난 정말 나같은 딸 낳고 싶은데, 엄만 왜 그런거지. 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