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처럼 잘도 짜맞추어져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니 멀미가 일어서 제일 복잡한 부분을 치우기로 마음 먹고 책 하나를 뽑았는데.. 테트리스 벽이 무너지듯 와라랏. 더워 죽겠는데 수습할 힘은 없고, 피라미드 형으로 쌓아놓고 중고딩 진격의 시절 일기장을 발견하여 주룩 펼쳐놓고 한참을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옛날에도 참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좋은 일 보다 더럽고 기분나쁜 일만 잘도 써놨다. 좋은 일이 있을 땐 왜 일기를 쓰지 않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 나중에 봐도 좋은 이야기들을 봐야 그랬구나 아하핫 하면서 기분 좋게 회상할 텐데, 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일들을 분 단위로 너무나 세세하게 쓴 일기장에선 어이 없어서 빵 터지고 어쩜 지금하고 변한게 하나도 없을까 생각했다.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네 Y2K가 지구를 공격할 것이네 마네 하며 떠들썩 했던 때, 써 놓은 일기가 오글거린다.
2000년 1월 1일 토요일 맑음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그렇게 기대하던 2000년이…그러나 Y2K 문제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지 한 해, 하루가 바뀌는 것 뿐이지만 사람들은 왠지 2000년이란 것에 동요한다. 만약 사람들이 나에게 새천년의 각오를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말할꺼다
“2000년이 올거라고 해도 결국은 하루가 바뀌는 것입니다. 전에도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이 되었다고 변한 건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하루를 사는것과 같이 후회없이 살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올해도 우리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냈으면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제 고1 되니깐..
세상에나, 고1 되는 걸 걱정하는 중딩때가 있었다니. 평범한 하루를 후회없이 살고 싶다니. 지금 난 매일 매시간 매순간을 후회하는 어설픈 어른인데!!!
돌아보면 난 저 때도 혼자 덩그러니 멍하게 있는 걸 좋아했고 남몰래 조그만 수첩에 모든 걸 기록하는 변태적인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부분 그 때 그때 드는 기분이나 책의 글귀들을 적는다. 그저 흘려 보내도 상관 없지만 어딘가에라도 끄적여 두어야 하루를 착실하게 산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꾸준히 한 게 있긴 있구나.
코찔찔이 시절 일기장이 왠지 지금보다 더 꽉 찬 느낌인 건 왜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