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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않아야 기억할 수 있다고 믿었을거야.

2014/11/10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경기도 호평이라는 처음 들어 본 동네로. 
지금 동네에서 20여년을 살다 다른 곳에서 살게된다는 생각을 하면 어이없게도 눈물이 그렁그렁 가랑가랑. 
낯선 곳으로 가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인지. 
살다보면 내가 있는 곳이 가장 편한 곳이 될것이니, 인간은 익숙에 약한 존재이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이 곧 적응하겠지. 

포장이사를 할 거여서 크게 신경쓰일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구석 구석 끼워져있는, 낡고 손 닿지 않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대체 이런건 왜 모았을까? 
세상에 아직도 안버렸네.
맙소사 누가 볼까 무서버. 싶은 것들.

특히 메모, 일기장, 일기라 부르고 푸념이라 쓰는 감정을 갈겨쓴 흔적들이 많다. 
지금이야 페북도 있고 트위터도 있어 순간의 감정을 몇 자 안되는 글로 날려버리니 메모하는 날이 확 줄었지만. 그 땐 정말 사소한 단어 하나도 메모했었네.

하, 이걸 어쩐다. 하고 가만히 뒤적거려보니 저마다 버릴 수 없었던 이유가 존재했던 때인듯.
아마 그 시기엔 지키고 싶은, 기억하고 싶은 것이었겠지.
한번쯤은 들추어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남겨둔 것들이었을까. 
덮어두고 먼지만 쌓이는 것들을 이 참에 버린다 해도 찾지 않겠지? 

정리하다말고 가만히 앉아 뭐라 갈겨놨는지 들여다봤다. 
말도 안되는 사춘기 시절 교환일기장부터 최악으로 힘들었던 20대의 어느 날 빈 틈없이 메워 쓴 일기까지.. 
참으로 새삼스럽고 놀랍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 기특할 정도로 나는 좋은날보다 고민이 많고 스스로 힘든 날이 많았다. 
이런 다크서클같이 무거운 흔적들을 왜 가지고 있었을까나. 
버리지 않고 안고 있어야 그 때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버리기엔 그 때의 감정들이 사라질까 아까워 그랬을까. 

별 이유 있겠나 싶지만 역시 한방에 쓰레기박스에 담진 못했다. 
최근 몇 년간의 다이어리를 펼쳐보고선 잊고 지내 다행이라는 생각이 밀려와서. 
당시엔 하루하루가 의미없다고 느꼈지만, 지금 펼쳐보니 그 때의 흔적이 지금의 날에 의미를 부여해줘서.
닿지 않는 곳에 두고 타임캡슐처럼 꺼내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싶어 적당한 박스에 모조리 담아두었다.
마음 깊이 지난 기억을 묻어 두고 지내는 것 처럼. 

해마다 바꾼 다이어리 커버에 붙어 있던 메모들.

2010 (무언가 도약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노력하면 이루어 질 것이다. 식상하고 진부한 말이지만, 때론 그 식상함에서 깨달음을 얻는 때가 올거야.
식상함이 곧, 진리가 되는 순간.’

‘구부러진 쇠를 다시 피려면 구부렸을 때와 같은 힘으로 일어서야 하는데, 무너질때의 힘과 일어설때의 힘의 정도가 너무 다르다.’

‘오늘도 시간은 흘러가고.
난 흐르는 시간을 옆에두고 머물러있다.’ 

‘진실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서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2011 (힘든 시기였나봐)
‘또 다른 시작이 있으려면, 끝이 있어야 해.’ 

2012 (총체적으로 최악의 시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함께한 시간이 존재하는게 잘못이라면 그뿐.’ 

 

시간은 참 잘 흘러간다.
그만큼 자랐으면.

이사가는 집 앞 풍경이 참 좋다고 한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면 마치 숲 속에 와있는 것처럼.
안녕 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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