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구워 먹겠다고 호기롭게 산 고기 불판에 삼겹살, 양파, 버섯, 파프리카, 감자, 김치 가득 올려 대낮부터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먹어댔다.
아항항항 주워 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기름판.
옆에 지나다니던 구우도 기름이 튀었는지 한 시간 만에 기름져 보인다.
우리 집은 주거형 오피스텔이어서 베란다도 없고 창문은 나란히 2개. 그나마 크기가 커서 다행이다.
오만 문을 다 열어두고 공기청정기도 풀 가동했건만, 일주일 뒤에 누가 와도 우리 고기 먹은 거 다 알 정도로 냄새는 절대 빠지질 않네.
환기를 시킨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이 무거운 기름내들은 계속 여기 있고 싶은갑다.
이럴 때 좋은 것이 ‘초’를 켜 두는 것인데, 무슨 집구석에 초 하나가 없냐!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계속 탁한 공기에서 책을 읽다 보니 다시 주위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어머 그래도 냄새가 금방 빠져나갔나 보네. 생각하고 나서 내 살과 옷의 냄새를 맡아보니.
환기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기름내에 젖어든 것.
주위가 맑아지긴! 내가 삼겹살이 되었어!
환기하려다 도리어 내가 꼬인 격에 내 다시는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나 봐라.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
하.
지금 이 기름내를 내보내기도 어렵지만
머릿속에 들어찬 잡생각을 내보내기는 더 어렵다.
통째로 환기할 만한 신기루가 나타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주면 좋을 텐데.
아니, 지금은 새로운 것이 아니어도 좋겠다.
오히려 지난 기억들이 내일을 보내는 여정에 힘을 더 보태주는 것 같으니.
날씨가 좋던 봄날 어린이대공원에서 주위에 맞지 않는 공주풍 드레스를 입은 6살 나와, 옆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추는 8살 오빠, 직접 싼 김밥을 아빠 입에 넣어주는 엄마와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김밥을 받아 드시곤 하나 더 입에 넣으시는 아빠의 모습이 스쳐 간다.
온 주위가 조용했고 네모지게 펴진 돗자리 위 우리 가족만이 있는 것 같았던 날.
기억여행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고 복잡한 실이 풀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어릴 적 따뜻했던 기억은 듬성듬성 남아 이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스쳐 가 마음에 안정을 준다.
고마운 존재.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