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이라도 좋으니 우리 집에서 살게 해주세요.
휴대폰 메모를 정리하다 작년 이맘 때 짧고 굵게 간절함은 가득 담아 적은 한 줄을 발견했다. 뭐가 저리 절박했을까.
갑자기 둘 다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집엔 미리 준비한 거였다고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에둘러 말하고.
결혼식이 코 앞인 건 둘째 치고 원하던 집에 가려면 약간의 대출이 필요했는데
둘 다 서류상 무직인 상황에선 정말 주민등록증 마저도 아무 쓸모없는 껍데기였다.
그땐 세상 천지가 다 날 안 도와주는구나 좌절했는데.
당시 자칭 운이 좋은 남자라는 차남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음. 다 잘 될 거야. 난 죽으란 법은 없거든.’
솔직히 당시엔 속으로 엄청 핏핏 거렸다. 이런 답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날 안심시키려는 말 같았고, 하 당장 취직을 해야 하나. 단칸방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아니지. 오빠가 살고 있던 원룸에 나만 들어가게 되는 건가. 으!
근데 정말 거짓말처럼 운이 좋은 남자의 말대로 우린 원하던 집에 스무스하게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완공 입주일도 완벽하게 들어 맞았고.
우리가 원했던 이 집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지나가면서 매 번 공사 진행상황을 눈여겨 봤던 곳이다.
“와, 저기 높은 오피스텔이 들어서네? 이거봐 여기 구조 참 맘에 들어. 여긴 컴퓨터방, 여긴 침실로 쓰면 딱이겠다. 식탁도 아일랜드야!”
그냥 맞장구 쳐 줬을 뿐 귓등으로 들었는데. 이 집을 계약하던 당시 그때가 생각나서 설명을 듣던 오빠 얼굴을 빤히 쳐다봤었지.
운이 좋은 남자의 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니 쎄멘 뽄드 냄새 뿐이던 우리 집에선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한다.
일어나면 화장실에 응가 치워달라고 눈 앞에 와서 쳐다보는 구우 냄새 (+응가냄새..)
요리만 하는 차남편 보글보글 찌개 끓는 냄새
잘하면 잘했다고 못하면 힘내라고 꾸워주는 고기 냄새
내가 제일 맛있게 할 수 있는 밥 취사 끝났다고 언능 열어 제끼라는 냄새
베란다가 없어 제습기 틀고 방에서 말리지만 향긋하니 자체 방향제 역할 해 주는 빨래 냄새
셋이 같이 들누버서 티비 보고 있으면 슬슬 올라오는 콤콤한 구우 발냄새
떨어질 날 없는 커피가 내는 꼬소한 냄새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냄새들.
킁킁
하루는 대청소 한 기념으로 구석구석 카메라에 담아 봤다.
집이 좁아서 몇 방이면 되더구만.
우리끼리 만든 사무실 방.
‘놀이터’ 라는 이름으로 곧 새 사무실에 입주하게 된다. (운이 좋은 남자의 자랑 2)
거실 겸 주방 겸
차남편 밤새거나 안씻거나 코골다 집 무너지는 날 꿀잠자는 곳.
내가 그린 아슈크림새 키키
친구 아름이가 선물해 준 시계랑 유일하게 둔 결혼사진 1장이 여기가 신혼집임을 말해준다.
사진 현상해서 이쁘게 쪼로록 두고 싶은데,
귀차나앙 헤헤헤
내가 사랑하는 소오파아-
내가 소파인지 소파가 나인지
2인용 사서 다행이지 더 넓은 거 샀으면 침대도 필요 없었을 것이야.
집은 남향이 아닌 관계로
24시간 쨍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해 지는 시간, 노을 노란색으로 물 든 건물 보고 커피 마실 수 있으니 좋다.
나도 모르게 계속 ‘내 방’ 이라고 부르는 ㅋㅋ 침실
오빠도 무의식 중엔 ‘미송 방’
그니까 코 그만 골아 ㅠ_ㅠ
너저분한 화장대 겸 일기쓰는 책상
나중에 이사갈 땐 꼭 침대 옆 테이블을 두거나 헤드를 둬야지.
읽으면서 잠들고 싶은 책들 좌라락 꽂아 놓을테다.
우리 소흔 원장님네서 완전 꼼꼼하게 완성한 우리 팝아트.
우리 집의 완성 구우.
앞이빨 다 빠진 사냥개.
오빠 일할 때 나랑 같이 티비도 보고
나 발 차가운거 귀신같이 알아서 요로케 따시게도 해주고
계속 안일어나고 꿀잠 자길래 그냥 책 읽었따.
우리한테 먼저 와서 엥기지는 않는데.
오빠가 강제로 눕혀기는 하지.
헤헤. 구우야 니도 우리 집 좋제?
내년에도 좋은 냄새, 좋은 일 가득한 우리 집이길.
아. 커피 한 잔 내리고 들누버서 슈스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