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환이랑 같이 다니다보면 계산할 때 애 손에 카드를 쥐어주게 된다.
점원 분이 한 번 웃으시는 것도 보기 좋고, 이게 뭐라고 자기가 뿌듯한 일을 한 마냥 싱글벙글한 주환이도 보기 좋고.
우리 엄마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텐데.
난 편입을 했다.
처음 대학 3년은 쉬지않고 알바를 해댔으니 내 생활비 정도는 손 벌리지 않았다.
졸업시기에 어쩌다 인턴으로 취업한 회사에서 번 돈은 학자금 대출을 갚을만큼 유용했고. 퇴근길에 아이스크림 사 갈 만큼 귀여운 짓도 했다. 그렇게 굴러들어간 회사에서 출퇴근 시간 그게 뭐죠 물어볼 새도 없이 온 체력 다해 일했건만 너 1년 계약직이었는데 몰랐어? 메롱. 갑자기 인턴들을 내몰아서 졸지에 취업준비생. 줄여서 백수가 되었다.
처음부터 편입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수능을 볼 때까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성적도 항상 중간이었고 그 시간에 책 보는게 더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전개되는 데엔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더라. 초대졸 졸업에 얄팍한 1년 경력을 내세워 이력서를 낸들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게 13년 전이었으니까 지금은 좀 나아졌기를. 무튼, 그나마 면접 한번 볼테냐 불러주는 곳에 가서 면접이라는 걸 보고 앉아있는데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귀한 딸인데 저 여자 남자는 왜 내게 이유없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뭘 잘못했는가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삼국지 전개 이야기하라는 사람에게 욕하고 싶은 마음을 품는게 나쁜 것인가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자존감이 한없이 내려간 생활을 했었다.
무슨 일보였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신문사 정규직도 아니고 에디터였나 그 비슷한 잡무 할 사람을 구한다길래 면접을 본 날이었다. 사람을 불러다놓고 질문이란 걸 하진 않고 비하를 했다. 너는 왜 전문대를 나왔어? 너는 왜 영어를 못해? 너는 왜 내가 붙여주지도 않을 건데 거기 앉아서 날 똑바로 쳐다봐? 너는 왜 아직도 모르는거야 너만을 향한 내 사랑을 무슨 철이와 미애도 아니고.. 난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이었어. 단 한 줄 깨달음을 얻게 한 고마운 놈이었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닥치는대로 제목을 읽었다.
소설, 에세이, 시, 인문, 종교.. 그러다 문제집 코너를 갔는데 어쩌다 들춰본 편입시험 문제집이 디자인이 예뻤다. 죄다 영어였고. 그 때가 9월 이었다.
편입 학원에서 반장을 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초중고 통틀어서 부반장 한 번 밖에 못해봤었는데 50명 넘는 반에서 반장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좀 웃긴다. 아마 그 때 담임이 내가 2학기 시작하고나서 들어간 막차 중의 막차라 내년까지 다닐거라는 예상을 하고 그냥 시킨 것 같다. 4개월 이었나.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점심엔 우유나 빵 먹으면서 문제 풀고 밤 10시까지 자율학습 하다가 집에 가서 폭식했다. 집에서 버스로 왕복 30분 정도 걸렸는데 학원에서 준 단어장을 보고 또 보던 기억이 난다. 내 평생 뭘 그렇게 열심히 한 적은 처음이었다.
4개의 학교에 합격했다.
그 중 면접 봤을 때 느낌도 좋았고 평소에 너무 궁금했던 학과가 있는 곳을 선택했다. 나를 선택해주세요 애걸복걸 눈빛과 두려움 초조함 안고 다녔던 취준생 기간에는 느껴보지도 못했던 감정이었다.
어서 돈을 벌고 싶었다.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는 졸업반보다 한참 위고, 이과에서 사회과학부로 옮기는 바람에 공부하는 것도 적응이 안됐고 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동시에 취업 고민도 했어야 했다. 첫 등록금만 엄마가 내주셨고 그 다음부터는 오롯이 내 이름으로 된 학자금대출. 이 전 학교 대출 갚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빚. 생활비 달라는 말이 너무 미안해서 아끼고 아껴 쓰다가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문서 알바를 했다. 출퇴근을 못하니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진짜 얼마 주지도 않는 알바. 방학 땐 당연히 시급 높고 몸 힘든 알바.
돈이 필요해지면 엄마를 찾았다.
그 당시 엄마가 무리해서 집을 샀던 시기라 돈에 너무 예민했다. 아빠와 같이 일을 하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 희망찬 계획이었지만. 건강악화로 아빠는 일을 못하게 되고, 그 빚과 부담을 엄마가 모두 떠안은 것이다. 집에는 백수 3마리가 있는 상황 이었다. 그래도 생활비가 모자라고 주말에 토익 시험이라도 볼라 치면 돈 좀 주세요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서 입이 안떨어질 땐 문자로. (뭐가 다르냐) 그럼 엄마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줬다. 그러다 나중엔 너무 자주 달라고 하니 카드번호랑 비밀번호를 어디 적어두라고 했다. 나는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엄마, 내가 나중에 꼭 돈 많이 벌어서… 입을 열었지만 엄마는 들은체도 안했다.
엄카를 내 것 처럼 쓰던 날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난 엄마한테 금전적으로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몸이 힘든 일을 하시고 이젠 많이 늙었는데도 돈 달라는 말 한마디 안하기도 하고, 한다 해도 줄 돈이 없다. 이럴 줄 알아서 그런건가. 엄마 내가 회사 다니면, 엄마 내가 결혼하면, 엄마 내가 돈 많이 벌면.. 엄마 꼭 호강시켜 드릴께 이 뒷말은 듣지도 않았다.
마음의 빚이다.
엄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