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희노애락을 잘 느끼고 경험하기 위해 수반되는 것은
데일리 수면의 질이다.
몰랐지.
태어나자 마자 얘가 나를 마루타 시험하듯 한 두시간 간격으로 울어 제낄줄은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머리채를 쥐어 뜯을 줄은
드디어 자는구나 기쁨을 만끽하고 잠깐 놀았는데 새벽이 오고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독 일찍 일어날 줄은
몰랐지 투성이다.
그래도 이제 육아 6년차.
아이의 기질과 행동패턴을 습득하고 이젠 얼추 나의 계획에 끼워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아직까지 적응되지 않는 것은 불규칙하고 짧은 수면시간이다.
어쩌다 아이와 같이 잠들어버리는 날엔
숙면 덕분에 며칠간 깨운함이 있지만 내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질척이고
억지로 눈을 떠 새벽까지 넷플을 달리고 책을 달리고 난 후엔
내가 미쳤지 성찰하며 죄 없는 애한테 예민함을 드러낸다.
확실한 건
아이고 잘잤다 생각이 드는 날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이 고맙다.
일어나자마자 눈도 못뜨는 애 입에 계란말이를 넣어주면서도
등원하는 버스 안에서 친구와 얘기하느라 나한테 빠빠이를 안해줘도
저녁밥을 세월아 네월아 우겨넣고 레고를 만지작 거리는 얼굴을 봐도
응가를 하네 마네 실랑이를 해도
자기 전에 엄마 아빠랑 책을 몇 권 읽을까 기분좋은 기대를 하는 중에도
이 아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네가 채우는 이 공기마저 친근하구나 느낀다.
내 몸이 힘들고 시간에 쫓겨 자는 시간도 버거울 때면 이 모든 순간들에 나만 있다.
왜 나는, 어째서 나만, 왜 너는 등의 구절로 시작하고
그래도 어쩌겠어의 두리뭉실한 말로 맺는 쌔드엔딩.
그래서 모든 육아서든 박사님이든
엄마의 행복을 중요시 하는구나 한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아직 너의 세계관은 나로 가득할 거란 생각을 하면 아득하지만
그래서 내가 먼저 편안해야 하는구나 납득이 된다.
자자, 푹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