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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싫은 물건

2025/05/20

몇 주째 틈만 나면 생각하고 고치고 또 생각하는 것 같다.
어린이가 학교 가는 길에 물어봤다.
“엄마, 세상에서 제에~일 싫어하는 게 뭐야? 아니 물건이 뭐야?
“음.. 글쎄 좋아하는 거 말고 싫어하는 거? 물건?”

질문을 던져놓고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이 뒷모습을 보며 잠깐 생각했다.
특히 물건 쪽은, 좋아하는 걸 말하는 게 더 쉬운 것 같네.
그리고 덮어두었는데 며칠 뒤 그래서 생각했냐고 다시 묻는다.
이거 무슨 학교 숙제니? 물어봐도 아니라고 하고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고.

나야말로 궁금하다.
나 뭐 싫어하지?
사탄 씌인 게임기, 마귀 같은 이상한 유투브 이런 거 말해야 하나..

좋아하는 물건을 말하라면 넘치게 할 자신이 있다.
지금 다다다 두드리고 있는 애정 듬뿍 담긴 맥,
한 손에 쏙 잡히는데 물 양도 적당히 담기는 유리잔도,
돌아보면 흐뭇한 나만의 질서로 꽂혀 있는 저 책들도.

더러운 걸 싫어하지만 그게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똥고집에 예의 없는 걸 싫어하지만 그게 또 만질 수 있는 건 아니고.
무지막지한 습도를 끼얹어 엎드려있는 더위도 정말 싫지만 이건 그냥 기상현상이고.
희한한 향신료 맛을 싫어하지만 음식의 뽐일 뿐이고.
당연지사 벌레도 싫지만 물건은 아니네.

또 물어보기 전에 어느정도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데.
은근 긴장되는구만.
그럼 넌 뭐가 제일 싫으냐고 한 박자 쉬어봐야겠다.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