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한 송이에 천 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꽃’이라는 한 글자만이 정갈하게 들어갈 자리를 내어준 정사각형 간판.
여중 여고가 같이 있던 학교 앞 정문에 그 꽃집이 있었다.
당시엔 학교 앞 꽃집은 입학식, 졸업식에만 장사가 되는 것 아닌가
색색의 다라이에 비닐 옷을 입고 한 송이씩 포장된 꽃들을 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선후배 사이에 응원과 호감의 표시로 아침에 짜잔 책상 위나 사물함에 꽃이 놓여 있기도 하고
쎈 여고 언니들 하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덩치 큰 오빠야들이 꽃을 막 한 다라이씩 안고 있기도 하고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으니 종종 생일인 친구에게 주기도 하는 이틀이면 못생겨지는 꽃 한 송이.
중학교 2학년, 생일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샌다고,
그때까진 밖에서는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중딩이었다.
같이 급식 먹는 친구 셋을 제외하고는 반에서 말도 별로 안 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건 절대 아닌 그냥 자의적으로 말 안 하는 애.
생일이지만 그리 들떠있지도 않은 차분한 아침이었다.
엄마 아빠 오빠 모두 나보다 일찍 나가는 사람들이어서
늘 그렇듯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버스를 타고 낑겨 세상이 싫어질 때쯤 정류장에 내리고
도대체 왜 운동장은 쓸데없이 넓은지, 왜 여길 가로질러 가면 선도부한테 잡히는 건지,
졸업하기 전에 꼭 여길 가로로 질러 가리라 쳇 펫 거리며 겁나 걸어서 교실에 도착한다.
친구 중에 꼭 있다.
나 생일이야. 말 안 했는데 알고 있는 친구.
다이어리에 누구누구 생일이라고 동그라미 별표 치는 친구.
1교시가 끝나고였나?
수업 시작 종 치기 직전에 친구 셋 중 한 명이 장미 한 송이를 주며 생일 축하해! 하고 웃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비닐옷을 입은 장미였다.
당연히 기분이 좋은 나는 고마워!! 소리쳐 불러야 했지만 자의적 고독을 씹던 중딩인 처지라
어? 어..어어 고마워어..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
아오 그 친구가 얼마나 무안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미송 장미꽃 몰아주기.
2교시 끝나고 나머지 친구 2명이 한 송이 씩,
3교시 끝나고 앞 뒤 짝꿍이 한 송이 씩,
4교시 끝나고 건너 분단 몇 명이 한송이 씩..
점심시간이 끝나고는 아니 애들이 뭘 잘못 먹었나 말 한마디 안 해본 애들까지 장미 한 송이씩을 책상에 놔준다.
그때 우리 반 인원이 40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거의 다 줬던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왜 주는 건지 절대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이거. 하면서 주기도 했다.
아무리 꽃집이 교문 앞이라고 해도 그렇지
아무리 매점 가는 길에 들렀다 올 수 있다 해도 그렇지
아무리 단 돈 천원에 살 수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쯤 되면 무서워진다. 뭐 어쩌라는 거지 왜 이러는 거지.
주목받기 싫어했던 난 생일이 죄스러워지고 이걸 집에 가져갈 용기도 안 나고
분명 나 몰래 누군가 미션을 펼치고 있는 건가 싶고.
몰아준 축하의 의미를 떠올릴 생각도 안하고, 아니 얘들이 왜이러나 내 생각만 했다.
또 정확히 기억나는 한 순간은 6교시 수학 시간이다.
눈 마주치면 딸꾹질 날 정도로 무서운 선생님인데
내 책상 서랍과 가방에서 삐져나온 장미꽃들을 보시고
“생일이니? 아무리 생일이라도 반 전체가 축해주는 건 처음 보네. 나도 축하한다?”
하시며.. 일제 지우개를 선물로 주셨다.
얼떨떨한 기운으로 가방에 교과서 대신 꽃을 넣고
다 안들어가서 양손에 장미 다발을 쥐고
집에 가려면 걷고 버스를 타고 또 걸어야 했는데
정말 그 길을 가는 마음이 순례길처럼 멀고 험했지만,
쟤 뭐 돼? 식의 눈길을 받느라 뒤통수가 아려왔지만,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나던 하루.
집에서 오빠가 너 뭐 돼? 하는 눈으로 나 한 번, 꽃 한 번, 쳐다보고
엄마 아빠는 딸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가본데 이거 맞나 싶은 눈으로 쳐다보고
나는 생일빵 먹느라 정신없을 뿐이고.
장미도 전염되는 건가.
누군가를 축하하는 선한 마음이 전염된 거라면
난 그 날 그 아이들에게 너무 큰 빚을 졌다.
대가 없이 무언가 베풀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자의적 고독 캐릭터만 아니었어도
한 명씩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었을텐데.
고맙다고 덕분에 오늘 너무 행복하다고.
태어나길 정말 잘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