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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서 (후쿠오카 하카타, 유후인)

2021/01/10

엄마, 오빠네 우리 가족 모두가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는 후쿠오카였다.

2019년 2월, 엄마 환갑 기념 여행으로 어디를 가야 할지 상의한 시기도 너무 늦은 데다가 구정 연휴여서 동남아권으로 가려던 계획은 말끔히 무산됐다.
어디 다녀봤어야 얼마 전에 정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지.. 정말 여행에 대한 경험치는 다들 제로여서 웃기고 슬펐다.
제주도로 알아볼까? 그래도 우리 처음으로 가는 여행인데 어디 나가고 싶다. 그럼.. 일본 갈래?

그렇다. 오빠와 나는 후쿠오카-유후인 코스로 2번 다녀온 경험이 있고 나는 결혼 전 이모, 정하와도 다녀왔으니 3번이다.
어딘가 익숙하면서 낯선 곳이라 일본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후쿠오카는 더더욱 친근한 여행지 느낌이고 유후인 료칸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추천했다.
이미 가 본 곳이니까 더 잘 여행할 줄 알았고 척척 문제없이 즐기다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고민 또 고민 후에 후쿠오카-유후인 코스로 결정하고 벼락치기로 여기저기를 알아보는데 아, 유후인에 료칸이 없다.
사람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꿀같은 구정 연휴에 방이 남아있을 리 없잖냐.. 그 누구도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못 한 일이지만 이미 가기로 한 거. 최선을 다해 찾았다.
정말 이 가격으로 가야하나 싶을 정도로, 평소보다 비싼 항공과 숙박비를 결제하고 가긴 갔다.
그리고 짧은 2박 3일동안,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과 실망의 숨소리와 들리지 않는 초조한 눈빛만이 가득한 여행을 하고 왔다.
처음이라서, 그랬다.

 

1일차.
첫 날부터 함께 모이진 못했다.
엄마와 우리는 아침 비행기로, 일 때문에 바쁜 오빠네는 저녁 비행기로 출발.

이 때 나도 괴로울정도로 일이 바빴고 육아는 차서방이 전담할 때여서 둘 다 미리 뭘 알아보고 할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몇 번 가봤다고 길이 기억났고 맛집이 떠올랐다.

모츠나베.
마지막으로 후쿠오카에 갔을 때 문 닫아서 못 먹었던 집.
우린 아는 맛이라 감동을 하며 후루룩 먹었는데 특유의 짠 맛과 짠 맛과 짠 맛 때문에 엄마는 신나게 드시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환이는 저 때 도대체 뭘 먹였는지 기억도 안나네.

 

뭐 한 것도 없는데 어둑해져서 캐널시티로 갔다.
숙소를 근처로 잡아두어서 우선 짐 풀고 만만한 쇼핑몰 구경.

아따 마 2년 전인데 왜케 아기같노. 귀엽다..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분수대 조명 앞에서 효도관광 티내기.

우리 아들도 기분 좋았었구나.

 

사실 후쿠오카에 도착하고 이때 까지는, 여행을 왔다는 것도 좋았지만 엄마와 얼마 만에 이렇게 다니는 건지 감격에 겨워 별 것 아닌 거에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고. 그러다 문득 구르마에 앉아 있는 우리 아들 한 번 쳐다보며 아 이것은 주환이와의 첫 외국여행 이기도 하구나! 느끼며 즐겼던 것 같다.
물론 피로도는 엄청났다.
말도 못 하는 애랑 공항부터 비행기 안,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동선과 식당을 고려하며 다닌다는 건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지쳤다. (물론 나보단 차서방이)
지금은 혼자 걷고 뛰고 말도 잘하고 말도 통하고 등등 데리고 다닐만한 자격이 충분하여 제발 어디든 가고 싶지만.

 

밤늦게 도착한 오빠네와 짧은 회동을 하고, 다음 날 유후인으로 가기 전까지 후쿠오카 시내에서 보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고 간단한 쇼핑을 하는 것.
평소엔 주환이를 데리고도 너무나 쉽게 느껴졌던 이 아무것도 아닌 패턴이, 여럿이 모이니 정신이 없었다. 여러 의미로 신경이 쓰이는 아이들과 엄마, 일본이 처음인 오빠와 새언니, 컨디션 난조로 힘들어 보이는 차서방. 새언니는 도착하자마자 먹은 라멘부터 탈이 나서 여행 내내 너무 아팠다.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괜히 미안했다.
나는 사실 2일째부터 예민치가 너무 높아져 뭘 했고 어딜 갔는지 기억이 흐물거린다.

그 날 따라 사람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맛있는 것 먹이고 싶어 간 곳마다 웨이팅이 몇 시간씩이고 문을 닫아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게 아닌데. 맛있는 것 반의 반의 반도 못먹고 이 좋은 날씨에 지하에서 걷기만 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얼마나 귀여운데 보지도 못했어.
겨우 자리를 찾은 백화점 지하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렌트한 차를 타고 유후인으로 서둘러 떠났다.
그래, 거긴 좋을 거야. 료칸이잖아. 비싸잖아. 노천탕도 있잖아.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먹은 라멘. 엄청 짰다.

주환이는 밥에 국물 약간 적셔준 것 같다.
엄청 잘 먹었고 먹은 즉시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여행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여러모로 즐기신 차주환 님.

호텔 조식도 싹쓸이 했지 아마.
너는 일본 체질이구나 우리 또 올 수 있겠다 좋아했었는데.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료칸은 대단히 좋진 않았지만 어렵게 구한 곳이라 마음이 편했다.
별 이유 없이 피곤한 몸을 좀 쉬게 하고 아이들이 편하게 뒹굴고 사진도 찍다 보니 이제서야 여행 온 것 같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좋은 료칸이었습니다..라고 마무리 짓기엔 또 너무 실망한 곳이기에 끝낼 수가 없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오사카 아리마부터 유후인 료칸까지, 갔던 곳 모두 노천탕이며 공용탕이며 너무나 만족을 했던 터라 아무리 시설이 낡았어도 기본은 하겠지 싶었다.
엄마와 새언니에게 구름 위에서 건져온 기대를 한 아름 안겨주고 들어간 곳은. 말이 프라이빗 노천탕이지 그냥 예전 중곡동 실로암 한 구석 온탕 하나만도 못한 크기에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익숙한 그냥 우리 옛날 집 목욕탕이었다.
와, 나 또 절로 미안하다 소리가 막 나왔잖아.
엄마는 막 웃으면서 야 이게 뭐 그렇게 좋다고. 한 마디 하시고선 탕에는 5분도 안 있고 샤워만 하고 나가셨다. 아니 엄마, 지금 만원어치도 안 있었다구? 어서 몸이라도 담가 어서!!
새언니도 아이들 씻기느라 정신없이 끝냈겠지.
아닌데.. 이게 아니야. 아 이러려고 여기 온 거 아닌데.

속상했다.
다들 처음이라 당연히 우리가 이곳저곳을 찾았고 떡하니 올라와있는 사진들이 너무나 훌륭했기에(아 순수했다) 여기로 가자 동의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잘 풀리지 않는 모든 일들이 괜히 미안했다. 미안하면서도 아니 내가 왜? 싶다가도. 아쉬웠다. 더 재밌고 편하게 맛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차서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일은 꼭 맛있는 것 먹자고 다짐하는데, 참 이거 원.

어찌됐든 여행 내내 웃으며 즐겨주신 엄마에게 감사를.

 

키즈메뉴가 훌륭했다.

음식 나올 때마다 찍었던 것 같은데, 왜 이것 뿐이지.

 

모두가 당황스러운 온천을 마치고 방에서 두런두런 얘기 하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호수에 가서 산책을 하고(지금 생각하면, 굳이) 여유 있게 커피까지 마시고 돌아왔는데
그 덕에 아침에 한번 더 이용할 수 있는 온천도 못하고 차려준 밥도 급하게 먹었다. 우리 중 누구도 유의사항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다시 후쿠오카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유후인 거리를 걷는 동안 다행히 날씨도 좋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느라 조카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막 또 극찬했던 유후인 버거집은 문을 닫았고
정말 이건 먹어봐야 해 하며 정차한 우엉 우동집도 당연히 soldout.
간식 좀 사갈까 했던 빵집이며 가게는 아니 뭐 날이야? 다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 진짜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말도 안 나오는 상황을 뒤로하고 편의점에서 요깃거리 사서 후쿠오카 시내로 갔다.

그래도 마지막 식사는 유명한 후쿠오카 함바그를 먹을 수 있었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대기했지만 대표가 줄을 서고 다른 사람은 쇼핑을 하는 걸로 지루함을 달랬다.
우리는 따로 우동을 먹었던 것 같은데 사진이 없네.

 

무려 2년 전 일이지만 발 끝마다 걸렸던 실망감은 아직도 진하게 남는다.
마지막으로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싸한 느낌까지.
국제선으로 갔어야 하는데 국내선에 잘못 내려서 이륙 10분 전인가 겨우 비행기 탈 수 있었지 아마.

 

주환이의 첫 비행.
이때 무료로 탈 수 있는 마지막 개월 수였던 것 같다.
근데 다시 가라면 무료고 뭐고 자리 하나 더 결제할 거다. 1시간 내내 애도 잡고 우리도 잡음.

 

 

근데 참 이상하다.
가족이 함께여서 좋았던 것 말고는 기억에 남는 거라곤 아쉬움 뿐인데 다시 가고 싶다.

처음이라서 그랬지,
우리 이제 여행다운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