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려 안달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곳이다.
생각을 형편없게 한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기대를 하진 않았다.
급 결정돼서 반나절 여행책만 보고 떠났기에 속속들이 아는 곳도 없었고 무엇을 보고 뭘 먹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계산도 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뭔가 마음이 동하는 감정을 느끼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 같다.
비우고 마주하는 풍경과 느낌과 분위기는 정말 생각보다 좋기 때문에.
급행열차 카모메를 타고 2시간 30분정도를 가야 하기에 와구와구 먹을 에끼벤에 크로아상에 음료수에 바리바리 소풍짐을 들고 열차를 기다린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뭔가 설레인다. 비행기보다 더.
패스에 몇 번 칸에 타서 몇 번에 앉으라고 다 찍혀있으니 잘 보고 쫄랑쫄랑 찾아가면 된다.
고개를 들면 전광판에도 한국말로 머라머라 되어 이따. 일본여행 참 편하군.
언니야가 방송한다.
어쩜 일본여인들의 목소리는 하이톤 중의 하이톤일꼬.
도레미파솔라’시’ 음으로 굉장한 친절을 품고 읊는 중.
우리가 탈 건 아니지만 열차가 예뻐서.
제이아르. JR
우린 4번 칸. 식탁칸. 오예.
거기 청년, 안추워?
이날 바람 꽤 불었는데 도시락먹다 체하겠어.
근데 맛있겠답.
4번칸 전체가 식탁이 있는 4인석이다.
운 좋게도 나가사키까지 갈 때는 이 넓은 칸에 우리 셋 뿐.
의자도, 식탁도, 창문도, 스탠드도 참 일본스럽다.
배고프다, 풀자 도시락.
맨 앞에 부페상 음식 요물조물 집어놓은 것 같이 생긴 것이 내가 산 도시락.
이모랑 정하는 귀엽고 작은 고기덮밥(소고기, 돼지고기).
그냥 작은 게 맛있다고 생각하고 사면 실패 안할듯.
후다닥 후루룩 먹고 날씨가 좋아 지나가는 풍경 모두 영화같았던 창밖을 뚫어져라 감상했다.
가는 내내 셋은 말 없이 각자의 방법대로 여행을 즐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무 좋았으니까.
나가사키역은 조용했다.
동네에 와 있는 것 처럼 조용하고 편했다.
나가사키에서는 전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우리는 일일패스권을 끊고 전차 노선을 따라 다녀보기로 한다.
일일패스는 500엔으로, 전차가 한 번 탈 때 150엔정도 하니 와따리 가따리 헤맬 것 까지 생각하면 훨 이득이다.
빠스는 뒤로 타고, 내릴 땐 앞으로 걸어 나가며 운전기사 아자씨한테 패쓰권 딱 보여주면 된다.
전차 노선도 잘 되어 있어서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음.
꺅. 전차닷.
이번 여행 사진 중에 제일 많았던 전차 사진.
예쁘다. 도시 색깔과 너무 잘 어울려.
처음에 어디를 갔더라.
유럽의 언덕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이었는데.
오란다자카 언덕.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냥 나가사키의 달동네인데. 그 골목 골목들이 기억에 남긴 한다.
2월에 유럽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비슷했는지.
전차마다 색이 다 달랐다.
신형, 구형도 종류별로 있었고.
전차가 다니는 하늘 지도.
전깃줄이 얼기설기, 평행하게 뻗어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이 날 참 맑았구나.
4일 중 날씨도 마음도 제일 좋았던 날이었지 아마.
여기부터 오란다자카 언덕을 오르는 길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들이 나온다.
벽돌들도 그 위에서 자던 고양이들도 모두 귀엽고 따스했다.
여기서 본 새는 진짜 컸다.
매 였던가?
우리 어깨 잡아다 끌고 갈 정도의 포쓰.
언덕을 다다닷 뛰어서.
쨘.
사지 길어 보이게 찍어줭.
십여분 정도 오르면 금방 갈림길이다.
이제 귀염진 골목으로 내려간다.
규칙적으로 아담아담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너도 날이 좋아서 노곤노곤하지?
한마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2층에 있던 까망냥이 보고 흠칫.
미안, 자는데 구찮게 해서.
다다다닷 올라가서
탓탓탓탓 내려오니
날씨는 더 쨍해지고, 다리는 뻐근하다.
이거 봐, 맛집이며 유럽이며 기대했다간 큰일났을 길이지.
좋았어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