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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밥그릇

2011/06/15

“내 그릇이 작아 많이 담을 수 없으면, 작고 소중한 것을 담으면 된다.”

서점을 서성이다 이모한테 키키봉 신간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집은 책 <깍두기 삼십대>.
삐딱하게 서서 읽기엔 날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많았고
처음엔, 에이 저번보다 별로잖아. 했지만 책장을 계속 넘기고 있는 내 머릿속엔 갈수록 공감 투성이 말풍선이 넘쳐났다.

1/3정도 분량에서 나를 잡아 당긴 말은 저 그릇 얘기.

오늘 대학 동기와 하루종일 ‘아, 재미있는 일 하면서 살고 싶어. 내 길은 뭘까 응응?’ 하며 노닥거렸었는데.
그런 날 탓하듯 키키봉님은 자신이 고민했던 것을 털어 놓는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당장 글을 써 보고, 책을 잘 읽고 싶으면 당장 책을 읽고,
돈을 잘 벌고 싶으면 지금 당장 돈 벌 일을 찾아 나서고…
누워서 입벌리면 감나무에 감이 입으로 숑숑 들어 올 일이 없단말을 그냥 널려놨으면 에잇. 덮었을 테지만,
왠지 나와 같은 고민의 연장선에서 얻은 답이 흘러들어온 과정들을 읽어 내려가자니 남 일 같지 않다.

‘이거 하고싶어. 저것도 해 보고 싶어. 아, 근데 내가 이거 저거 어떻게 해.’
난 늘어놓긴 잘 하지만 수습을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수습이 안될 때 쯔음 홀로 자책하며 땅굴을 파고 든다. 역시 난 이거밖에? 나 원래 이따위? 등등.

그러게, 키키봉님 말처럼 그릇이 작으면 나한테 맞는 작은 걸 담으면 되는건데.
그 중에서도 소중한 걸 골라서 말야.
억지로 큰 걸 끼워 넣다 깨지면 어쩌누. 그러다 넣으려는게 망가지면 어쩌누.

이 대목에서 내게 쫌 더 가미되어야 할 껀 소(小)심을 넘어선 중(中)심정도…(뭐?)
작은 밥그릇도 예쁘고 튼실하면 그만인데. 내껀 소심하기까지 하니,
이건 뭐 내용물들이 채워지기도 전에 유리 깨진다며 발 못들이게 하는…
마치 벼르고 벼르다 지른 신발 밑창 닳을까봐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격…….(이건 또 아닌가..)

무튼,
남은 2/3 읽으면서 이 아저씨랑 대화 좀 더 해보고.

책 중에 ~하라. ~하면된다. ~하는 방법. 등등의 처세술, 자기계발서는 진짜 한 트럭을 줘도 읽기 싫은데
어떤 이의 수필, 에세이는 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중 나은 생각은 좀 따라해봐도 될까. 라는 욕심에
이 사람 내 나이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까, 나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위안을 얻어볼까 하는 마음에.
턱턱 잘 집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순간엔 난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 기분 묘하다.

술자리, 커피숍에서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
속내를 비춘다고 하지만 한 커풀 싸여져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
이것들이 내가 하는 고민들과 일치한다면 더더욱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진다.

다 읽었다. 내려놨을 때 왠지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저도 그래요, 힘내요.’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까지.

이 책 컨셉이 여행 중 얻은 인생 이야기인데
덮고 나면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더 커질까봐 벌써부터 불안.

마이너스 인생에 여행은 사치일 뿐!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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