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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여행지, Fukuoka

다온이 품고 떠난 여행

2017/01/05

애초에 태교여행은 고사하고 출산 전까지 마실도 포기했었다.
규모 있는 프로젝트가 물려있기도 했고, 구우도 아직 회복중이라 엄두를 내지 못한 것. 
오빠는 거의 한달을 밤낮 바뀌어 일에 매달려 있었고 나도 일을 하며 틈틈히 운동을 하고 구우를 돌보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지속됐다.
11월 구우가 크게 아프고 힘든 날들을 보낼 때 이런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하지만 막상 시계를 자주 보고 잠잠한 시간이 계속되니 자꾸 딴 생각이 난다. 

별일없이 지낸 하루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느지막히 일어난 오빠한테 괜히 심술을 부리고 TV를 틀었는데 후쿠오카 모츠나베를 먹는 장면이 나오더라. 아, 맛있겠다. 이 한마디로 짧은 여행이 결정됐다. 그래, 우리 모츠나베 먹고 올까?  항상 여행을 하기 3달 전엔 항공과 호텔을 알아봤던터라 갑자기 가는 여행은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다행히 구우도 정상처럼(우리가 보기에) 회복됐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로동물병원 덕분에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이런 급 여행은 돈이 든다. 작년보다 30만원 정도는 더 들어간 것 같다.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갔던 후쿠오카를 2017년 1월 1일, 새해 첫 날  또 가게 된다. 난 세번째네.

 

대한항공 family 우선 예매 덕에 빽빽히 줄서있던 사람들 옆으로 삽시간에 체크인을 마치고 패스트트랙으로 입국심사도 1분만에 마쳤다. 
임산부는 혹시라도 염려되는 방사선 노출에 대비해서 여직원이 손으로 몸을 수색해준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다온아 여러모로 기분좋은 출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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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잠을 못자고 나왔더니 안그래도 부은 얼굴에 모찌가 가득 붙었다. 

1시 10분 출발이라 창 밖으로 따땃한 햇살도 받고, 주는 음식 먹고 잠깐 까불다보니 도착이다.
제주항공은 1시간 30분쯤 걸렸던 것 같은데, 1시간만에 도착! 

후쿠오카 공항은 워낙 작기도 하고, 세번째라 그런지 헤맬 새도 없이 하카타역에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아!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다. 
공항에서 하카타역까지 260엔. 버스표를 구매하면 10엔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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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유후인, 나가사키도 가느라 하카타에서 오래 있진 않았다.
이번엔 후쿠오카 교통의 중심인 하카타역 근처에서만 있기로 한다. 아, 2박3일은 너무 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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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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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작년에 만족스럽게 이용했던 Leopalace Hakata로 정했다.
이번이 6번째 일본여행인데 더블룸 컨디션치고 넓고, 쾌적하고, 한쪽 벽이 통유리라 답답하지 않아 좋다. 가장 마음에 드는건 넓은 욕실. 다녀본 호텔 중에 욕조도 크고 제일 넓다. 누군가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백번 추천해주고 싶은 곳. (조식도 맛있엉) 

호텔 앞에서 올해도 예쁜 스즈가 인사해준다. 예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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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캐리어 대신 백팩 하나로 다녀왔다. 
가져갈 짐을 주섬주섬 챙기다보니 이게 필요할까? 이건? 날도 짧은데 괜히 짐될 것 가져가지말고 진짜 최소한의 것만 챙겨보자 하여, 옷도 화장품도 간소하게 가져갔다. 백팩에도 공간이 남을만큼. 
담을 공간이 없으니 쇼핑도 하지 않게 되고, 돈도 덜 쓰고, 물건들에 눈 돌아가는 시간에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히히 호호 즐거웠다.
지내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두 손이 가벼워 오며 가며 서로 손을 잡고 다니는 길이 좋았다. 
돌아올 땐 피로누적으로 오빠 어깨가 좀 힘들었겠지만. 
여행은 두 손 가볍게, 마음은 무겁고 행복하게 다녀오는 게 제일이라는 걸 이번에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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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대낮에 도착해서 미리 찾아둔 맛집 리스트를 체크하고 길을 나섰다.
룰루랄라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오늘 휴업 ㅠ_ㅠ 
그랬다.. 미리 알고 가긴했지만 사실 우리가 도착한 1일부터 4일까지 일본도 신정 연휴여서 대부분의 (맛집)식당들은 문을 닫았다.
다행히 대형 쇼핑몰은 정상영업을 했고 그 안에 음식점들도 많은 지역이라 실망하기엔 일렀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는 내내 발품팔아 찾아간 곳은 진짜 다 문을 닫아서 너무 슬펐다. 흑. 

첫 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먹었던 우동과 텐동. 캐널시티 앞 WEST 건물에 있는 집이다. 
둘다 배고프고 힘들어서 그런지 엄청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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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텐동이 참 맛있었는데. 1/3쯤 먹었을 때 시커먼게 꽂혀있어서 보니 심지 굵은머리카락 -_- 
불러서 얘기하니 종업원, 주방장이 돌아가면서 사과하고 새롭게 세팅해서 다시 준다.
에이 입맛 없어졌어. 하고 숟가락을 내려놨다가, 다시 따끈하게 준 텐동 한그릇을 다 비웠다.ㅋㅋㅋㅋㅋ 마시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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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한거라곤 우동 먹고 유니클로에서 속옷 몇개 샀을 뿐인데 벌써 해가 넘어간다.
전날, 전전날 밤을 새고 일을 한 오빠는 이미 혼이 나가고 다리만 반자동으로 걷고 있는 상태라 일찍 들어가서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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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마자 오빠가 기절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하하하하하 어머 나 잠깐 짜증돌이 해도 돼? 돌아서면 배고플 때라서 ^^^^^ 
사실 나도 잠을 못자고 와서 너무나도 피곤했는데 왜그리 잠이 안드는지.
제일 좋아하는 샌드위치랑 우유먹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듣고… 하 뭘 해도 잠이 안왔다. 
평소 걷는 것보다 많이 걸어서 다리랑 허리도 저리고, 새벽 4시까지 잠못들고 낑낑 거렸더니 오빠가 눈 감은 채로 주물주물 마사지를 해준다. 
임신 8개월차 정도 되니 알아서 자동으로 손이 반응하는 서방 마사지 서비스. ㅋㅋㅋ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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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3시간도 못자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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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부터 apple매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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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오빠 컴터를 맥북 프로로 바까주기로 했는데 여긴 얼만지 보러나가자 해서 들어갔더니. 세상에 마상에 현지인부터 중국인까지 줄이 어마무시하다. 구매하는 사람이라는데 아침부터 부지런하셔들.
우리가 사려는 스펙이 한국보다 70만원정도 저렴해서 사서 가야겠다 결정을 하고 물어보니 영어자판은 아예 재고가 없고 지금 찾는 스펙도 매장에 없단다. 
차서방 시무룩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 서울까지 닿겠더라. 
후쿠오카엔 텐진에 매장 하나뿐이여서 아쉬운마음 뒤로하고 언능 다음장소로 이동. 갠차나 한국가서 사줄께. 

일본에 오면 스타벅스 한정메뉴를 마셔본다. 
이번엔 코코아&바나나 시리즈인데, 안먹어도 무슨맛인지 알겠다 생각하고 먹어도 맛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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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타야 서점 구경하다 만난 FLYDOGS 책. 사올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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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하니 서둘러 함바그집으로 간다. 
하카타 본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문을 닫았고, 작년에 갔던 텐진 키와미야로. 
연휴라 그런지 현지인들도 엄청 많이 온 듯, 1시간반을 기다리고 10분만에 다 먹었다. 
한국 후쿠오카 함바그보다 고기, 밥 질이 달라 달라. 이번에도 역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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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느라 서있었더니 상체랑 하체가 분리된 느낌. 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쉬었다 가자.
아니 근데 온동네 스타벅스며 카페에 사람이 넘쳐나서 어디 궁디 붙일 곳이 없다.
그래 연휴엔 나와 놀아야지. 암. 

그래서 한국이었으면 가지도 않았을 디저트 카페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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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그를 먹고 이런걸 먹는다.
오빠는 한입도 거들어주지 않아서 나 혼자 다 먹는다.
이게 또 속으로 들어가는 내 위장이 참 신기방기하다. 
그와중에 너무나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었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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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온아, 안힘들어? 나름 엄마 아빠랑 처음 하는 여행이네. 
28주차에 접어드니 아주그냥 차고 돌고 안에서 뭘 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방방 뛰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가끔 놀라서 혼자 으흐흥 하기도 한다.
어딜가나 사람들 눈은 내 배에 고정되고, 웃는 사람도 신기해서 눈이 커지는 사람도 있다. 네네 저 임산부에요. 많이 먹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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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후쿠오카에 오게 된 계기, 모츠나베를 먹으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캐널시티 근처에 있는 맛집을 찾아갔지만 역시나 문 닫음. 
하카타역 아뮤즈플라자에도 맛있는 곳이 있다길래 갔더만 또 사람 겁나 많아. 한 40분 정도 기다려서 먹었다.

곱창도 곱창전골도 좋아해서 너무나 기대가 됐다. 
얼큰한 국물이 아니라서 느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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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늘이시여. 왜이렇게 맛있는거에요.
적당히 짭잘한 나가사키 짬뽕 베이스 국물에 완전 신선한 특곱창에 풀이 죽은 양배추, 우엉, 부추가 때려주는 환상의 맛. ㅠㅠ.
정말 이거 먹으러 후쿠오카 왔다고 할 만하다. 백점! 
공기밥에 짬뽕사리까지 넣어서 따뜻하고 배부르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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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곤한 오빠를 끌고 일찌감치 호텔로 들어가 난 또 이런걸 먹었지. 
맥도날드 한정메뉴 초코파이. 말 그대로 파이 안에 찐득한 초코가 가득하다. 
한국에서 만나고 싶어요…오빠 한입도 안주고 내가 다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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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큐 지하에서 챙겨온 초코 러스크 까까.
4년 전에 오사카에서 처음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 없었는데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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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마지막날 아침. 2박3일은 정말 짧구나. 
가고싶던 곳 다 문닫고 힘들어서 일찍 자고 쇼핑천국인 하카타에서 물욕없이 다니니 참 재미없었겠다 싶지만, 둘이 히히덕거리고 돌아다니는 게 오랜만이라 나름 서울에서 3일 내내 데이트하는 기분이라 신났다. 다온이가 태어나고 이런 시간은 없겠구나 생각하니 더 애틋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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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침, 날씨 맑음

 

제발 제발 영업중이어라. 
이치란 라멘 본점을 찾아갔다. 

헤헤 문열어따. 빨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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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기본 기본에 체크하고 계란, 차슈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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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역에서 먹었던 라멘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토핑도 많이 없고 간단하다.
국물이 자극적이지 않고 면도 부드러워서 먹어본 돈코츠 라멘중에 제일 깔끔했던 것 같고.
양도 많지 않아서 둘 다 이거먹고 다른거 먹어도 되겠다! 하면서 후루루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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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배에 타코야끼도 한판 때려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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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고대했던 우동집을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사실 이때부터 내 다리와 허리는 이미 내것이 아닌 것.. 
환전한 돈이 많이 남아서 에라 모르겠다 택시를 탔는데, 5분 남짓 거리에 비해 넘나도 비싼 것. 그치만 힘드니까 이럴때 돈 써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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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택시까지 타고 찾아갔는데 역시 우릴 반기는 철문… 그래요 알았어요… 연휴에 찾아온 우리가 잘못이지. ㅠㅠ 
택시 아저씨는 문닫은거 보고도 쿨하게 내려주곤 가신다. 
한국 같았으면 아이고, 문닫았네. 어쩔까 다시 역으로 갈까요? 이럴텐데. ㅋㅋ 

가기 전 마지막 음식을 뭘로해야하나 고민하다 다시 하카타역 쇼핑몰로 왔다. 
그중에 있어보이는 곳에 가자 하고 선택한 메뉴는 우나기동. 

옛날에 결혼식 부페였었나 뭣모르고 먹었던 장어에 크게 혼이 나서 절대 먹을생각도 안했었던 음식인데, 용기내서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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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여기 한그릇 더 주세요! 하고 싶을정도로 맛있어! 
원래 먹지 않던 메뉴라 비교할 순 없었지만 비리지 않고 양념도 너무 맛있고 잘 지은 밥과의 조화가 끝내준다.
먹으면서 후끈 후끈 열도 나고, 질 좋은 보양식 한그릇 먹은 기분. 
부산 사람인 오빠도 장어 상태 너무 좋고 맛있다며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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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게 먹고 커피 한잔하면서 공항 갈 시간을 기다렸다.
코끼리가 누나 할 정도로 부어오른 다리를 주물주물 해주는 사랑스런 우리 서방, 일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었을텐데 낙오되지 않고ㅋㅋㅋ 즐거운 여행 함께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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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아쉽지만, 둘이 언제 또 여행을 갈 수 있으려나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찌릿하다.
다온이랑 같이 가는 여행이 마냥 기다려지기도 하고. 
둘이 많은 걸 해보고 싶었는데 조금은 아쉽다는 오빠의 말이 예쁘고 고맙다. 
아직 남은 날이 많으니 이런 저런 행복 켜켜이 쌓아가면서 재미있게 살자. 

다온아, 
3일동안 열심히 먹어서 찐 2키로 도로 빼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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