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용 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해질녘이면 포구에 나가, 또 다른 소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내 삶이 점점 더 거짓스러워지는 두려움을 견디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때와 같은 소나기는 다시 내리지 않았다. 다만 오후의 찬연한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을 발하는 어느 늙은 어부의 주름진 경륜과 나는 자꾸만 눈이 마주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은 어쩌면 정말이지 잠시 반짝이고 사라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지… 나는 왜 그걸 좇아 일생을 살려 하는가. 나는 이국의 어느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잠을 못 이루고 나의 업보와 욕망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 이것은 그저 내 욕망의 흐름인가 아님 내 삶의 가치인가. 내 설령 마지막에 내 생의 가장 진실한 뼈아픈 후회를 남길지라도 후회는 후회고 그것은 박수 받을 만한 일이 아닌지. 여행이 생활이 되는 것만큼 거짓스러운 게 세상 어느 곳에 또 있을까. 또 이렇게 잠이 들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 길 밖의 길 , 149p –
아끼는 친구 혜원이가 선물로 넘긴 책. 표지에 써있다.
“최혜원은 이 책이 제일좋아.”
그만큼 어울려. 난 과감하지도 못하고 그러니 용기가 필요한 순간엔 항상 두부처럼 뭉그러진다. 갈래길에서의 결정이 어려우면 지금 가는 한 길에서라도 확신을 심을만한 뚝심 하나를 잡아야 하는데 여기는 익었나, 저기는 뜸좀 들었나 푹푹 찌르고 간만 보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오호통재라. 지금 나의 반짝반짝. 욕망의 흐름과 삶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는게 눈에 보인다. 마음의 확신만이 그 선을 그어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