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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2022/02/04

읽는 내내 졸업 후 입사 초기부터 회사에 묶여 지냈던 대리 시절까지 파라락 지나가고 몰입과 공감이 불을 붙여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때의 내게 달은 무엇이었나.

제목만 보고서는 달이 뭘까 생각했다.
SF소설인가, 글이 진행되는 중간 잠깐 졸았던 꿈이 깨지않고 이대로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오려나.

그저 그런 당연한 일상에서 만난 흙수저 입사동기 3명이
이더리움 코인에 투자하게 되어 떡상과 떡락으로 춤추는 그래프를 껴안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학자금 대출금에 허덕이고 1.5룸에 사는 것이 꿈인 일상을 보내다
생각지도 못한 투자 결심으로 여덟 달 만에 33억, 3억, 2억을 번다.
호기심, 욕심, 욕망, 존버로 이루어낸 그들 자신의 것이다.

달은 이들이 현실에서 함께 꿈 꿀 수 있는 최대치였다.
목표였고 하루 하루 살아낼 수 있는 주문이었다.

읽는동안 와, 코인아 제발 올라라 200만 넘겨라 떡락 후 폐인이 된 이야기로 끝나지 마라 제발,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른다.
은상 장군님이 가즈아! 가자! 달까지 가자! 호기롭게 외쳤을 땐 나도 기합을 넣고 싶을 정도였다.

나름의 성공을 거뒀지만 일단 회사는 계속 다니자는 주인공의 끝맺음은
투자 이전의 마음가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겼고 다부진 의지마저 느껴졌다.
역시 돈이 주는 자신감인가. 크 해피엔드.

 

다소 보수적인 근무환경과 박봉에 박을 더하는 회사에서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
아침에 눈을 떠서 지옥철에 낑겨 몰아치는 업무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도 너무나 아끼는 동기들과 지냈던 첫 회사는 돌아보면 시트콤같은 날들이었다.
당시엔 질질 감옥 끌려가듯 매일을 울상으로 앉아있었지만 메신저 지하세계에서 와다다다 욕을 퍼부으면 언제고 더한 욕으로 받아쳐주고
팀장, 선배들과의 점심시간을 구제해주는 동기들이 있었다.

신입 때 영업기획팀에 가기 전 필수로 현장 영업팀에 몇개월 있어야 했는데
정말 한달에 일주일 빼고 매일 외근, 지방출장이라 며칠을 집에 못들어간 적도 많았다.
팀원 5명 중 나만 여자였고 그게 너무 싫었고 동기들은 그런 나를 안쓰러워 했다.
미팅이 일찍 끝나 회사에 복귀할 때 돌같은 노트북 가방 세개를 어깨, 목에 둘러맨 내가 총총 파티션 사이를 걸어갈 때면 하나 둘 셋 미어캣처럼 얼굴이 쏙쏙 올라온다. 그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났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고 지금도 만나면 그렇게 든든하다.

 

이직을 거듭하고 대리 만년이 되었을 땐 정말 위기였다.
남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일도 할 만큼만 하는 것 같은데 난 왜 항상 바쁘고 일복이 터졌는가.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집에서 자는 시간보다 많은 것에 질릴 정도였다.
분명 오르긴 했는데 따져보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연봉 인상율이 비참했고
월급의 반 이상을 적금에 부었지만 나이 서른에 독립할 수도 없는 통잔 잔고에 웃음이 났다.

그때의 이유, 목표는 뭐였지.
진급 욕심은 없었지만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 일하기 위해 퇴근해서도 일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이름 석자 값 하려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사람이 되기보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어이상실이다.
너 없인 회사가 안돌아간다는 입에 발린 말, 너밖에 없다는 상술에 넘어가 영혼을 갈아넣었다니.
그거 다 팀장이, 선배가, 옆 자리 대리가 일하기 싫어서 나한테 떠미는 일이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애정을 쏟고 싶다.
평범하고 흙냄새 나는 인생이지만 잘 보라고, 뭔가 찾고 싶지 않냐고, 모험을 해보고 싶진 않냐고 물어보고 싶다.

 

달은 닿을 수 없어 더 간절하고
형체가 없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그렇게 붕 떠올라있다가
언젠가는 안전하게 돌아올 곳이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