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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유니클로(UNIQLO)

2014/06/25

어머 몹쓸 눈가 주름, 중력의 법칙을 따르는 늘어진 뱃살, 굽은 척추, 숙면이 필요해. 라며 서른을 넘긴 반환갑 타령을 하는 딸이 얼마나 한심스러우셨을까. 아빠의 무언가는 무조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고보니 대단한 것도 아니다.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나는 사랑으로 무장한 엄마의 폭풍 지적질. 크크크. 

그 무언가 중에 하나가 ‘아빠의 패션’ 이다. 
기억하는 아빠의 패션은 패피 승급정도는 아니더라도 몸에 맞는, 어울리는 준수한 옷차림인데, 내가 나이들어가는 걸 으앙대고 있을 때 아빠의 체격은 이미 나이든 후라는 걸 까맣게 잊고 예전의 모습만 기억했나보다. 어느 각도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어도 ‘크다’. 아빠 나의 꿈인 오오싸이즈가 되어버린거야? 

나는 갠잖아~ 라도 말씀하시지만 그 뒤엔 항상 여운이 있는 걸 안다. 
나는 갠잖아~ 허리가 좀 커서 벨트에 구녕 하나 더 뚤벘어.
나는 갠잖아~ 너 안입는다고 내놓은 남방 입으면 돼.
나는 갠잖… 에이진짜.

새식구 인사하는 날도 다가오고 엄마가 아빠의 갠잖아 패션에 혀를 내두르고 항복하시길래 아차 싶었다.
그리고 달려간 곳은 우리의 유니클로. 
앞서. 난 옷을 살 때, 쇼핑속도는 30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상관없이 이건 사야해! 싶으면 언니 포장속도보다 카드 꺼내는 속도가 더 앞설 정도로. 
좋게 말하면 속전속결, 나쁘게 말하면 주머니 사정 생각 안하고 싸지른다.

유니클로에서 남자 옷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고르는 것도 처음이지만 뭔 놈의 사이즈가 그렇게 많고 헷갈리고 비슷해서 이놈이 저놈같고 저놈이 이놈같은 옷은 또 왜이렇게 많은지. 셔츠, 티, 바지 모두 샴쌍둥이 저리 가라였다.
정신차려. 아빠의 체격을 떠올려. 내가 아는 것에서 마이너스 2사이즈. 아빠의 피부톤을 떠올려. 몸매는 일자라인. 얼굴도 일자라인.
그렇게 좌라락 집었더니 바지3개, 셔츠2개, 티3개가 됐다. 사이쥬는 내가 입어도 감쪽같은 에므.(M)
이 대목에서 놀라운 사실은 저걸 죄다 합쳐도 내가 신고 있던 신발값도 채 안되던 거…..라……반성 반성 반성.

집에 와서 애미가 귀여운 내새낑 우쭈쭈 하며 옷 하나씩 입혀보는 마음과 설레이는 기분으로 아빠한테 하나씩 걸쳐주고 바지 기장 체크해주고 시간을 보냈다. 물론 사이즈 모두 대 성공 ㅠ_ㅠ

아빠, 언제 이렇게 늙으셨데.
내 신발값도 안하는 옷들 유니클로 직원들보다 더 꼼꼼하게 접고 또 접고, 딸내미가 고생해서 늙은 애비한테 허튼 돈썼다며 입은 헤죽헤죽 하면서 말만 삐죽삐죽. 
속이 타들어간다. 

철마다 유니클로의 핫패션을 M사이즈로 모시겠다고 약속하면서 훈훈한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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