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가을바람이 참 좋은 요즘.
날 좋다고 마냥 노다니기엔 마음 한켠에 부담만두가 찡박혀 있어서 영 그렇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둘다 처음 선택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여지없이 소심해지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 손을 내밀면 여지없이 계약도장 찍을만큼, 선택의 결정권을 가지려 하기엔 남아있는 일들이 너무 크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하자나.
항상 말로만 계획을 세웠던 신혼집 동네 탐색을 휘이휘이 자전거타고 돌아다녔다.
출발할 땐 분명 너무나 따사롭고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토요일이지 참..
얼대부터 건대 너머까지 여자남자남녀노소 주말 즐기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자전거가 짐이 되어 버렸다.
무턱대고 부동산에 들어가서 집 좀 보여주세요 하진 못하겠고.
일단 리스트에 올랐던 동네들을 한 곳 두 곳 자전거로 실실 돌아봤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동네 뒷골목들을 샅샅이 보고,
올려다보지도 않았던 건물들을 목 젖혀 살펴보고.
신축공사라도 진행하는 곳이 있으면 앞에까지 가서 언제 완공인지, 평수는 어떤지 눈도장 찍고.
결혼하고 나면 본가도 경기도로 이사가는 마당에 신혼집도 낯선 곳이면 우울증이 올 것 같아서 둘 중에 한명이 살던 동네로 가고 싶었다.
한 두시간을 돌아댕기다 완공일이 다 되어가는 빌라를 둘러보게 됐다.
들어오세요.
자 이쪽이 거실, 앞쪽이 방, 요긴 다용도실, 조긴 화장실이네요.
현관이라는 곳에 들어서자마자 한 눈에 스캔이 다 되는 크기와 구조여서 둘러보는 데 몇초면 충분했다.
전세대란인 중에 금값 됐다는 전셋값 듣고 나서는 눈앞에 흐릿.
아저씨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원모얼타임?
정신적 체력적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에서 돌아본 일정이여서 그런지 둘 다 녹초가 되어 이른 귀가.
집 앞에 도착하고 고갤 젖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훑어봤다.
비밀번호 띠띠띠띠 누르고 들어가니 엄빠와 공쥬가 나를 반긴다.
엄마 얼굴을 보고 다녀왔어 보다 더 먼저 꺼낸 말.
“엄마, 나 이 집에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어어어어어엉엉.”
워낭소리에도 눈물샘 터지는 홍수감성이라 말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보니
우리엄마 선방했다는 표정으로 겁나 뿌듯하게 웃으신다.
“이제 알겠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뒤엔 항상 엄빠가 있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일상다반사의 군데 군데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집아 어디있니?
헌 집 줄께, 새 집다오.
엄마아아아아앙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