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가장 예쁜 시간대에 노다닐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사람이며 나무며 땅이며 볕을 받아 비치는 또 다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시간이 한가해지면 몸도 마음도 한가하다못해 한없이 쳐져 껌딱지 마냥 침대에 눌러 붙어버리는데, 이렇게 나와 걷고 있으면 뭔가 모를 뿌듯함이 넘친다.
감사의 순간은 셀 수 없는 거였지.
혜화와 산책한 어린이대공원.
집에서 엎어지면 닿을 곳에 있지만 조카랑 동물원에 갔던 것 빼곤 지나가는 동상마냥 너무 안갔네.
이제 경기도 주민이 되어 멀어진다는 생각에 좀 많이 다녀줘야지. 이런, 공짜잖아! 진작 다닐걸 이렇게 넓고 나무도 많고 좋은걸.
가을이 점점 짧아져 5시면 어둑한 밤처럼 쌀쌀한 것만 기억했었는데,
짧은 만큼 이른 낮과 오후의 가을은 반짝반짝 빛난다.
동물의 왕국을 지나칠 수 있나!
간만에 갔더니 날 반기는 너희들의 분내는 참으로 변하지 않는구나.
잠자는 호랭이.
궁디 퉁퉁 해주고 싶은 뒷태 뽐내며 들누버있네.
좁은 곳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니 코 자 토닥토닥.
맹렬히 생긴 인상을 가지고서 겁나 기엽게 꾸벅 꾸벅 졸던 표범. (치타가?)
니 눈엔 내가 먹잇감으로 보이겠지…
와쪄?
정찰대 미어캣.
넌 정말 어이없이 귀여워.
사랑스러운 사막여우.
10시 10분 방향 귀들을 쫑긋 세우고 자는 폼이 사랑넘쳐.
숭이숭이 원숭이.
엄마한테 딱 달라붙어 있던 애기 원숭이는 세상 모든게 신기해보이겠지.
애기숭아, 니가 있는 곳이 너무나 작은 세상인 걸 알게되면 너무 슬프겠지?
왼쪽 방향 니 형은 이 좁은 세상 평정하고 사방팔방 잘 뛰댕기는구나.
거울이냥. 쌍둥이냥.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쿨쿨.
한가한 어린이대공원의 가을볕에 눈살쪘다.
입 앙 다물고. 또 오께 빠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