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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던 것 처럼

2014/11/17

정신 집나간 몇 주가 지나고 이제야 주위가 좀 보인다.
그래, 역시 시간이 약이고 인간은 적응에 능한 동물이고. 

서울보다 겨울이 빨리 찾아온 평내동엔 온통 방한복 차림이다.
첫 날 재깍 알아챘어야 하는데 혼자 멋부리다 얼어죽을 애처럼 입고 돌아다니다 겔겔겔로그 몸상태가 되었고,
평내 촌년 티내느라 이사람 저사람 붙잡고, 이거 서울가는 버스 맞지요? 이거 타면 어디가요? 버스에서 우는 사람 처음 보나요오-
지하철로도 버스로도 다녀봐야 좋은 걸 알거라는 주위의 말에 이사 강행군 중에 칼바람 뚫고 오늘은 지하철, 내일은 버스, 모레는 지하철+버스 타다보니 이건 뭐 PT 내가 왜하고 있는지. 양 손 가득한 가방에 근력운동은 기본이요, 천국의 계단을 걷다 보니 유산소 하루 1시간은 우습다. 
장거리 출퇴근 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서울나들이는 너무 지친다.

결국은 남은 모르고 나만 아는 서러움을 겪은 후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다녀왔습니다아아아어어어어어어어엄마는몰라아아아아 하며 눈물을 뻥 터뜨리고 말았다. 옆에 4살 조카 수아가 벙찔만큼 징징댔으니 말 다했지. 
사실 힘들었던 날 낮에 엄마한테 투정 아닌 짜증을 부렸는데, 우리 어머니 돌아오는 대답이 ‘운전해^^’ 였다. 아놔, 어머니 내가 지금 면허가 있소 차가 있소 내 놀리요지금? 그냥 허허 웃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훈훈한 엄마 얼굴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라 고갤들.. 뭐 그랬지. 
나도 우리엄마처럼 애를 키우면 참 멘탈갑으로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우는 딸에게 걱정스러운 미간으로 한번 더 하신 말은 ‘고시텔 얻든가^^’ .. 뚝 그칠께.
철없는 고모 달래주는 수아 덕분에 순순히 마무으리.

짜증을 내어 무얼하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제 여기가 우리집인걸.
항상 그래왔듯 일상을 보낼 곳에 뿌리 내리고 가지 치고 적응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 잘 안되고 있다. 
두달 후면 신혼집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작용한 것 같고, 갑자기 일어난 여러 가지 일에 치이다 정신머리가 치댄 반죽이 된 것 같고.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혼자 잡지 못하고 뱅뱅 떠도는 기분이 든다.
생각보다 몸과 마음은 기억된 시간과 공간을 쉽게 잊지 못하는가봐.

늘 그랬듯, 오늘을 살자. 잘. 

 

아참, 러버덕 가는 마지막 날 인사해쪄.
즐거워쪄 러버덕.
너도 흘러 흘러 다른 곳에 가서 또 그렇게 귀염귀염 발사해줘.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러버덕. 
그런 인간이 되어야 할텐데.

러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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