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신년,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리라 헛된 다짐을 해도
심신과 환경을 다시 정비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이다.
누군가 뜬금없는 선포를 하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난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딱히 없다.
욕심이 없어 그렇다기보다 빨리 포기해서 생긴 이유다.
그러기엔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해도 되니까 지금 딱히 필요하진 않으니까 등.
근데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하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러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살다 스치는 생각들을 접어놓고 그게 뭐든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싶어 졌다.
올 해의 목표는 그게 뭔 지 꺼내어 보기.
당장 생각나는 건 여행.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더 이상 여행은 없다고 하는데 못한다니까 더 하고싶다.
국내든 해외든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다. 가능할까.
글쓰기나 책 읽는 모임도 가고 커리큘럼에 맞춰 산출물도 내보고 싶다.
이것도 역시 바빠서, 이래서 저래서 못했던 것 중 하나인데
모이지 말라고 하니 더 가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다.
그리고 열 번, 백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을 곡들을 피아노로 쳐보고 싶다.
언젠가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하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잠깐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지금 남은 기억은
개구리 왕눈이를 닮은 원장님, 웃지 않는 얼굴을 가진 보조 선생님, 학원에서 유일했던 친구, 그리고 하농이다.
규칙적인 저음의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동그라미를 사과로 만드는 연습 완료 노트는 이미 채웠지만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하농만 몇 번이고 더 쳤던 것 같다.
고3 때 배운 베이스 기타도 그런 이유로 좋아했다.
피아노는 나중에 늙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매 예방도 될 것이고.
그러려면 키보드라도 사야 할 텐데 어디에 두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렇지만 금액도 상당하네.
어후 이 돈으로 차라리 노트북을 바꿀까. 지금 사봐야 주환이가 뚱땅거리다 망가질 게 뻔하잖아.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
사람은 안 변한다.
1월 1일이 오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