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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2021/01/02

주환이는 요즘 확실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놀랄 만큼 늘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는.
더 신경 써서 말해야지 의식하지만 종일 붙어있다 보면 그게 참 어렵고 어렵다.

자기 전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주환아, 엄마가 주환이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뭘까?
– 응? 몰라아~
생각해봐아~ 무슨 말을 제일 많이 하지이?(뭔가 내심 기대하고 물어보는 나)
– 사랑해에~ 그리구..
뭐하는거야! 뛰지마, 치카해, 손씻어, 손닦아, 책읽자, 빨리자, 누워, 혼난다, 차주환?
엄마는 혼날때 차주환이라고 하더라? 어린이집 섬샘님도 혼날때 차! 이러더라? 하하하 차! 하하하
(자기 혼내는 걸 혼난다 라고 함)

그럼 그렇지.
애가 쉬를 하고 손을 씻으면 그냥 씻는갑다 생각하면 될 걸
비누칠은 제대로 하는지 손에 남은 물기는 남김없이 닦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말로 또 확인하고
언제나 똑딱똑딱 시간에 민감한 불치병 때문에 신나게 노는 애 앞에서 시간 됐다 치카하자 시계 보이니 정리하자 밖에 깜깜하자나 자자 틈을 안주고 말하는 엄마가 얼마나 피곤할까.
아직 5살 꼬맹이지만 조금만 더 크면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방문을 닫거나 피해 다니거나 선방한답시고 인상만 팍 쓰고 다닐텐데.

나도 그랬다.
늦게까지 일하고 오는 엄마 얼굴에는 이미 흑곰 백마리가 지나간 것 같은 그림자가 따라 들어오는데
마주친 순간 뭐 하나라도 걸리면 잘 때까지 흑곰들이 나한테 달려드는 기분으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므로 알아서 피하거나 일찌감치 불 끄고 잤다.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한다지만 어린 마음에도 지금 엄마가 이유 없이 내게 분을 푸는 건지 진심으로 잔소리를 하는 건지 정도는 알아차렸다.

주환이에게 하는 말에 내 기분을 담지 말아야지, 짜증 내지 않아야지 수없이 다짐하지만 미안하게도 잘 안된다. 분명 나한테 이유가 있을텐데.
오늘도 심기가 불편한 엄마 앞에서 재롱떨다가 된통 당하고 구석에서 입 삐죽 내밀고 책 보던 작은 등이 생각나서 코가 시큰거린다.

 

주환아, 아까 자석놀이할 때는 엄마가 왜 혼냈는지 알지?
– 응. 주환이가 자석 던져서. 근데 엄마, 아빠도 자석 던졌어?
아니? 아빠는 자고 있었잖아.
– 그치만 아빠도 엄마한테 혼났잖아. 아빠는 뭐 던져서 혼나?
응 아빠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혼나. 자자.

내일은 꼭 오늘보단 들 해야지.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