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았다 뜨니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는 식상한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요즘 매번 드는 생각 중 하나다.
어느새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고
누워서 버둥대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약속하지 않아도 삼삼오오 어디선가 나타나 동네를 몰려다니던 고딩 친구들과는 20년 지기가 되었다.
마흔의 나이를 상상하던 때가 있었나.
회사에 붙어 일만 하던 때에도 그렇지만 늘 오늘, 아니면 곧 다가올 프로젝트 마감일 만을 생각했을 뿐
먼 미래, 아니 가까운 미래도 그려보지 않았던 것 같다.
마흔 너머, 혹은 그 이상의 나이는 구석에 짱 박혀 있는 여느 부장 팀장의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나는 지금 이 찬란한 오늘을 즐기리라
실상은 즐기지도 못하는 일벌레 주제에 그렇게 나의 앞날을 기만했다.
사실 아쉬운 게 없었던 것 같다.
생각을 하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고
놀고 싶으면 지쳐 기어 들어올 때까지 놀았고
지독하게 바쁘다고 스스로를 추켜 세우며 으스댔고
그때는 몰랐던 빛나는 나이를 앞세워 뻐길 수 있었다.
먹고 죽자.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 글쎄 크게 후회하려나.
지금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나불거리고 안주삼아 까불던 젊음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 아쉽다.
하루가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앞서 오는 날들이 아쉽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나는 그거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구 생활을 오래 이어갔으면 좋겠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지 못하는 묶임 상황들이 있지만
그래 언젠가는, 그래 그때가 오면 할 수 있겠지 뭉실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찬란한 젊음의 때는 아니지만
남편에게 아직 성대 짱짱하게 잔소리 폭격을 날릴 수 있고
생활운동이 되어버린 집안일과 갖은 루틴으로 근육이 아직 쓸만하고
가계 비용 걱정으로 매달 머리를 팽팽 돌리며 뇌를 적당히 사용해 주는,
느슨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또렷한 때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고
지금 몰랐던 것은 또 나중에 그리워하며 깨닫겠지.
가는 세월이 아쉬운 만큼 떨어진 것 없나 살피고 주우면서 그렇게 꼭꼭 눌러가며 살아야지.
안그럼 이러다 훅 칠순잔치 하겠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