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여행, 뜨거운 여름 바쁜 일 덕분에 늦어진 휴가를 태국으로 다녀왔다.
어딜 가기까지 참으로 미적미적하는 나와.
일본, 제주도 같은 가까운 곳 외엔 선뜻 좋다고 말하지 않는 차남편은 티켓팅 까지의 과정도 참으로 길다.
신혼여행이 생각지 못하게 거칠고 힘들었으므로 이번엔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여행을 가고싶더라.
제주도부터 오키나와, 싱가폴, 발리, 푸켓.. 남들이 좋다는 휴양지 후보를 늘어놓고 고민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정장애가 와서 우울해 있다가. 뭔 정신이었는지 자려고 누운 새벽에 벌떡 일어나 오빠에게 노트북 화면을 들이 밀며. 당장 지금 결정해 어서 나 지금 결제할거야. 호통을 치고 일사천리로 비행기, 호텔을 예약했다. 역시 진행은 빨리빨리. 혼을 빼야하지. 암.
그런데 우리같이 여행 진짜 가끔 가는 애들 심장 쫄깃해지게 예약한 바로 다음날 방콕 폭탄테러 흐엉 ㅠ_ㅠ
평소 안전하지 않은 것 불안한 건 털끝도 안건드리는 차남편은 취소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바로 질문.
안돼. 갈거야. 우리 갈 때 쯤은 괜찮을거야.
사실 속으론 엄청 걱정하고 취소규정도 보고 했지만 겉으론 엄청 쿨한척 이 때 아니면 언제 갈거냐며 블라블라라라 잔소리를 늘어놨지.
어쨌거나 별 일 없이 떠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퍼진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일이 많든 적든 집순이 집돌이가 좋은 우리에게 이번 쉼은 참으로 잘한 일.
밤 비행기라 민낯에 가장 편한 옷으로 공항행행행.
돌아올 땐 기다림에 지치지만 떠날 땐 신나고 들뜬 맘에 입꼬리 광대 승천.
제주항공 정말 좋은 가격에 다녀왔는데
기내식 사랑하는 우리는 물밖에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너지고 내리 잠만 잠. (짝은 신라면 5천원은 너무해ㅠ_ㅠ)
태국 시간으로 새벽 1시 가까울 때 도착하느라 호텔까진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택시 사기가 어마어마 하다던데 어쩌지. 걱정을 달고 밖으로 나왔다.
사전 블로그 조사에서 (ㅋㅋ) 1층으로 나가면 Public taxi가 있으니 50밧 더 내고 안전하게 가라 하길래 그대로 실행.
행선지를 적어주지도, 뭐 별다른 안내도 없고 그냥 키오스크 같은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고 해당 번호가 적혀 있는 택시에 가서 타면 그만이었다.
타자마자 미터택시? 우리 수코타이 갈거야. 제대로 잘 가줘. 돈 더 낼테니까 고속도로 타도 돼.
어버버 초딩영어로 대화 끝내고 오빤 불안한 맘에 구글 지도로 실시간 거리 보고. ㅋㅋ
거참, 어딜 가든 믿지 못하는 세상 슬프드만.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온 기사님이 혼잣말이라기엔 너네도 같이 좀 들어줄래? 하는 크기의 목소리로 “오우 아우 왓더. 아우” 이러길래. 놀란 난 와이와이를 연신 외쳤지만 무시하고 걍 잘 가드라. 고속도로 통행료 25 +50 밧 추가로 더 지불하고 수코타이 호텔에 무사히 도착.
1층에서 짐 꺼내고 빠빠 할라는데 갑자기 정색하면서 또 안가. 아 왜에에에에.
마중 나온 지배인이 아따따따 얘기하더니 우리한테 너네 왜 퍼블릭택시비 50밧은 안주냐고. ㅋㅋㅋ 아아아 가릿가릿 줘야지요 암 까묵었엉.
별 사건 없이 무사히 도착한 수코타이 호텔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룸 컨디션이야 가기 전에 많이 검색해봐서 놀라지 않았지만 호텔 모든 직원분들의 친절함과 미소는 참으로 감동.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 계속 수코타이 수코타이 하며 만약에 다시 방콕에 간다면 여길 다시 오자고 말 할 정도로.
내가 진짜 어디 놀러가서 호텔 방 사진은 잘 안 찍는데 여긴 호텔 구석구석 다니면서 다 찍고 다녔다.
청소 해 주실 때마다 바뀌었던 웰컴 과일과 수제 초콜릿
다리 쭈욱 펴고 멍 때리기 좋은 의자
큰 욕조에 입욕제 풀고 노곤노곤 몸을 풀었지. 으흐아아
예약할 때 허니문이라고 했드니만.
꽃이랑 향이 있는 미스트, 마지막 저녁엔 초콜릿 케이크에 편지까지. 진짜 너거들은 감동이었어.
뻥 친건 조금 미안하지만.. 스페인 호텔에서 받아보지 못한 허니문 서비스으. 헤헤.
피곤하지만 꽁꽁 묶여 있는 옷들 다 걸어주고
침대의 푹신함은 물침대로 착각할 정도여서 엄청 잘 자고 일어났다.
조식 먹을 생각에 알람 울리기도 전에 인나서 텨 나갔지.
방콕에서의 첫 날 아침.
방콕에서 지낼 호텔을 고를 때 아무것도 상관 없다는 오빠가 한 가지 원했던 건
도심이지만 자연에 있는 것처럼 시끄럽지 않고 힐링할 수 있는 정원이 있는 곳.
캬. 나 진짜 잘 고르지 않았어? 내가 생각해도 진짜 잘했쪄.
호텔까지 들어오는 입구부터 작은 숲을 연상시키던 수코타이는 전체 층은 나지막하지만
모든 방에서 연못이나 나무가 내려다보이고
건물이 모두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조식 먹고 산책을 하기도 좋고 밤엔 은은한 조명도 예쁘니 얘기하며 걷기도 좋다.
조식은 정갈하고 맛있고
직원들은 모두 친절하고 웃으면서 커피는 더 마실래 차는 어때 시도 때도 없이 물어봐주고
테이블을 주시하면서 저들이 필요한 걸 느끼기 전에 내가 가서 서브할테야! 의 서비스. 진짜 있는 동안 최고로 박수 짝짝짝.
커피와 빵은 어쩜 그리 입에서 녹던지.
에쉬레 버터랑 연어, 야채 같이 크로아상에 넣어서 와구와구.
직접 만들어 주는 오믈렛도 1일 1개.
매일 마시던 카푸치노.
마지막 날엔 저렇게 귀여운 수코타이 호텔 로고를 샥샥샥.
레스토랑 한 쪽은 바로 앞 연못이 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아 이것이 힐링이로구나 탄성이 터질 만큼 뷰도 좋다.
만족스러운 수코타이 호텔.
3박 4일동안 먹고 수영하고 자고 읽고 놀고
이대로라면 방콕 너는 사랑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해.
만약에 파타야 케이프다라만 다녀 왔으면 이렇게 충분한 행복감은 못 느꼈을 텐데.
방콕, 파타야 순서로 정한 것도 참으로 잘했다아아.
노닥거린 날도 어서 꺼내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