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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기 쉬운 것은 없다.

2013/06/07

삭신이 쑤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새로 주문한 행거를 방 안에 놓고 나니 왠지 문이 닫힌 ‘장’이라는 곳마다 그득하게 들어 차 있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옷가지를 꺼내 정리해야 겠다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제기랄. 시작함과 동시에 후회했다. 

산 기억도 없는 옷은 물론이고 남들보다 옷을 많이 사지도 모으지도 않는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버릴 옷, 안입는 옷, 안입을 옷 꺼내 놓고 보니 내 카드값이 왜 이해할 수 없이 찍혀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눈 앞에 똑같은 모냥의 소재의 옷들이 쌓여 있는데 그놈의 취향이 뭔지 비슷한 옷만 기본 4가지가 넘었다. 그래 누굴 탓하겠나 내 잘못이오 자숙하며 마스크를 둘러 싸고 비닐장갑을 끼고 쌩 난리를 피웠다. 장장 5시간이 걸렸다.

최근 3년간 손대지 않고 걸려 있던 옷.
유행을 돌아온다지만 그 돌아오는 유행에 당첨되지 않을 것 같은 옷.
살 빼면 입을거라 다짐하며 옷에게도 합리화를 주입시켜 접혀있으라 했던, 입을 가망 없는 옷.
옷 위에 옷 위에 옷 위에 옷..아이파크마냥 층층 쌓여 있던 고층 리스트 중  1층의 오염된 옷.
옷들도 1+1를 했었나? 똑같은 디자인과 소재로 샴쌍둥이를 자랑하던 옷 중 낡은 것.

들을 죄다 자루에 담아 버렸다.

버렸는데. 난 분명 버리고 지쳐 자고 있었는데.
눈을 뜨고 거실로 휘청거리며 나오니 세상에 그 자루가 떡하니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너와의 관계. 이제 청산하고 싶단 말이다. 그 육중한 몸을 해서 다시 온다 해도 절대 받아 줄 이유 따윈 없어. 넌 쓰레기야!! 
별 생각을 다 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엄마가 그걸 다시 주워 짊어 지고 오신 것..
그리곤 이 중에 안 버려도 될 옷들을 다시 분류 하시고 아는 고아원에 갖다 주거나 정말 못 입는건 고물상에 팔아서 돈을 받아 오실거라고.

크.. 가치의 탄생.은 좀 거창한가? 여튼 활활 타올라 재가 될 뻔한 애들은 다시 새 생명을..

어머 이건 내가 사야지, 사지 않으면 범죄야, 이거 내가 안입으면 누가 입어? 온갖 합리화로 집에 들고 오는 새 옷들도 언젠간 헌 옷이 되고 옷장 안에서 썩어 갈텐데 당시에는 왜그리 손에 못 넣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감정 없는 옷들을 정리할 때도 꼴에 내 꺼라고, 버리는게 마음 아프고 버려지는 애들을 왜 데려 왔을까 후회가 밀려 오는데, 감정 있는 사람 사이 정리는 오죽할까 실 없는 생각이 스친다.

처음의 감정 그대로 대하고 마주하고 배려하면 ‘정리’해야 할 것도 없을 텐데. 
가끔은 신중하지 못했던 처음을 후회하기도,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고 기억에 없던 처음에 감사해 하기도 한다.

뭐든, 정리하는 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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