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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7일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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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기억해야 할 날이 생겼다.
사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스며드는 날 이겠지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험난한 여정도 특별한 문제도 없었던지라 
마치 오래 전 이미 언약한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차근차근 하루하루를 지워가며 맞이한 우리의 결혼식.
이라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니 역시 마음의 갈등도 많고 혼자 울며 고민한 날도 있었던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한달이 지난 지금 그 날을 더듬어보려니 벌써 기억이 얕아져 생각에 잠기고 만다.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신부입장은 잘 했는지 사진 찍을때 이빨부자 티내진 않았는지. 
영상촬영을 할 걸, 왜 식상한 영상을 남기는지 지나고나니 알 것 같다. 정말 정신 없는 신랑 신부는 그날의 풍경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니까.

전 날, 엄마와 같이 잤다간 둘다 눈티밤티가 되어 식장에 가지도 못할까봐 한두시간의 조우로 끝냈다.
나가서 맛있는 걸 먹자는 엄마에게 입맛이 없다고 하곤 교촌치킨에 감튀까지 시켜 먹은ㅋㅋㅋ. 참았으면 얼굴이 좀 더 작아보였을텐데 (크헝)

치킨을 먹을 때 부터 엄마 눈은 안봤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가서도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하는 장면에서 저 딸이 내딸이여 저 아가 내 아여, 심정으로 펑펑 울었는데. 아 내 결혼식에선 어떨까 상상만으로 눈물샘이 터질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장범벅으로 신부대기실에 앉아 감사한 사람들과 환하게 인사를 나누고 신나게 사진을 찍고 긴장이 풀려갈 때 쯤, 곱게 화장한 엄마가 들어온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근데 그 뒤로 들어오시던 외할머니가 눈물을 줄줄 흘리시며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셔서 아놔 참았던 눈물이 왈카아악 쏟아지려는 걸 그 뒤에 들어오던 웨딩홀 관계자를 보고 뚝 그쳤다. 폭죽 터트리시나요? 케익 커팅은요? 

그냥 그 때 울고 마음을 추스릴 걸.
친오빠의 축가 가사가 머릿속에 들어온 순간부터 애써 참았던 눈물이, 엄마 아부지께 인사하는 짧은 순간에 짙은 농도로 쏟아져버렸다.
눈을 맞추지 말라고 하기에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도 시야에 걸쳐진 엄마 머리카락만 봐도 눈물이 났다.
사진이고 뭐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맘껏 짧게 울었던 것 같다.
그 울음을 멈춘 건 엄마의 한 마디.
인사 후에 신부를 꼭 안아주라는 사회자의 말에 엄마가 나오면서 귓가에 대고,

“야. 울지마 쯧!”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 그리고 그 날 신부 엄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에서 오빠가 전한 대로는, 내가 엄마를 보자마자 울고 나서 오빠는 나보다 엄마를 먼저 봤는데. 사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고 계셨다고. 강철인 오빠는 그 모습을 보고 그자리에서 울 뻔 했다고. 난 이 얘길 듣고 비행기에서 펑펑 울었다고.

이 날의 이야기를 풀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진한 떨림과 기쁨과 감동과 아쉬움이 범벅된 날. 
오신 분들께,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여 절이라도 하고 싶었던 날.

32년 살면서 내가 가장 빛나보였던 날. 
다신 없겠지, 이런 기분.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던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졌다.
얼굴을 비추는 친구들, 손님들에게 얌전히 앉아서 웃기만 하는 것이 죄송할 정도로.
그저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잇몸웃음을 발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체력이 들어갈 일이 없던 시간. 

예쁘네? 으캬캬컄ㅋ 다신 없을거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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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장통 같았던 살롱.
신부들은 이름표를 달고 긴 의자에 차례대로 앉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린다.
똑같은 속눈썹, 볼터치, 머리를 하고 신랑은 그 모습을 연신 찍는다.
살면서 켜켜이 정성들인 화장이 첨이라 드레스를 입고 난 후엔 마냥 기분이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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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모임 친구들.
이제 심지 한 명 남았다!
내가 먼저 갈 줄은 나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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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를 친오빠가 불러주는 건 못 본 것 같다.
신랑이 불렀으면 더 감동이었겠으나, 씨알도 안먹힐 것을 알기에.
우리의 노래라고 생각했던 김동률의 ‘내사람’
초반부엔 가사도 틀리고 음도 틀리길래,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점점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고 옆에 있는 신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물이 좍좍.
친구는 우리 남매의 우애에 감동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날 혼자 감성에 충만해서 울었던 것ㅋㅋ

축가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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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상에서 서로를 마주볼 때 오빠가 그렇게 떨고 있더라.
바달바달.
촘촘히 면도한 얼굴도 어색하고,
내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신기하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날 바라보던 순간도 행복하고.

여러모로 웃음이 났던 순간.
입장, 단상에서, 퇴장 때 신부가 너무 웃더라는 말을 들었으니 뭐.ㅋㅋ
좀 조신히 웃을 걸 그랬나.
스냅사진 기대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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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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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면서 보이던 친구들, 고마운 사람들.
나도 결혼식에 가면 퇴장할 때 자리를 잡곤 축하한다 어쩐다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말도 안들리는구나. 그랬구나. 
이제 끝이구나, 이제 여행간다. 아 생각보다 안울어서 다행이다.
이런 감정들이 엎치락 뒷치락 씨름을 했던 짧은 퇴장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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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친구가 자기 카메라를 짊어 지고 여러 컷 찍어주었는데.
얼마 전 결혼하느라 야도 스케줄이 바빠서 이 사진 말고는 아직 받지 못했다.
스냅사진은 5월에나 나온다 하고ㅋㅋ

사진 받는 순간 또 이런 마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겠지.
친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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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한 달이 지나니 이제 내가 혼자가 아님을 실감한다.
가끔 무섭기도, 늘 좋기도, 재미있기도, 진지하기도 한 감정들은 점차 흐려지겠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꿈이 있는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매년 결혼기념일이 돌아오면 이 글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올 해 봄날은 그래서 좀 더 일찍 찾아왔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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