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인상적인 글귀나 상황, 눈에 담아내는 것들을 마주한 다음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때 진한 여운이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내게 남은 흔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아서겠지. 

감정의 흔적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젠 반복적인 유산소 운동을 하며 무심코 휴대폰 연락처를 켜서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 이름을 하나 하나 읽었다. 
마음으로 소리내어 읽으니 그 사람의 얼굴 표정부터 습관까지 모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중엔 미처 관리하지 못해 절대 안만날 사람인데도 아직까지 연락처 한귀퉁이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도 있어 가차없이 삭제했다. 삭제하면 그만인가 싶었는데, 계속 머릿속에 갑자기 마주한 이름 석자 당사자와의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두더지마냥 솟아 올랐다. 인연의 깊이가 얕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그렇지. 좋은 흔적만 있는 건 아니지. 
진한 농도의 흔적을 애써 억지로 지우지 않고 오래 가지고 있을 것인지, 애써 눌러 지워버릴 것인지. 특히나 후자의 경우는 당장에 떠오르지 않아 더 고민스러운 순간인 것 같다. 지우고 싶지 않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데. 진한 잉크처럼 스며들어 내 의지와는 다르게 처음 잉크를 떨어뜨린 때로 돌아가버리니.

그러고보니 좋은 흔적을 대신하는 말이 있었네.
추억.
말 그대로 좋은 기억. 

내게 단 것만을 주워담고 살진 못하겠지만,
잘 담아 간직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때 현명하게 지우는 것도 중요한 듯 싶다. 

신혼여행의 막바지쯤, 바르셀로나 해변 앞 카페에서 오빠가 커피에 그림을 그렸다.
여느 커플에겐 흔한 일일지도 모르나 워낙 표현이 없는 부산 사나이님에겐 큰 용기였으리랔ㅋㅋ
겉으론 유치해했지만 눈 앞의 지중해와 같이 마주하니 참 행복했다. 

만난 지 얼마 안됐을 때, 스타벅스 커피를 받아오더니 갑자기 빨대로 눈코입 스마일을 그려대서 속으로 엄청 기분이 좋았었는데, 그 이후로 내가 꼴랑한 기분일 때 가끔 그려줬던 것 같네.

일상적이지 않은 여행지에서 꺼낸 예전의 좋은 기억. 
꽤 짙은 흔적으로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므흣하다. 이제 커피에 올려진 우유거품만 봐도 이 날이 생각난다.

좋은 기억의 흔적을 잘 담아가며 살자. 

바닥까지 마셔도 없어지지 않던 하뚜.
신랑은 이걸 프로포즈라 부른다…아!!!

거실에서 자던 구우가 내가 있는 사무실방으로 쫄래쫄래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이제 그만 일이나 하라는 신호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