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다.
따지고 보면 알고 지낸 건 벌써 14년차. 따지면 나이먹은 티만 나니, 그만두고 수다판만 벌였다.
줄기 없이 이리저리 튀는 화제들로 빵빵하게 스팀을 올리다가
갑자기 ‘너는 지금 뭘 제일 하고 싶냐’는 질문에서 절정을 찍고 터졌다.
(친구 애인이 홀연히 독일로 1년간 여행을 갔다는 대목에서, 아이고 부러워 아이고 배야배야 하다가 튀어나온 한 가닥.)
글쎄, 하고 싶은 거야 많지.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근데 이젠 무작정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잘 할 수 있는 걸 찾는게 더 중요한 거 같다?
라고..오글멘트를 한번 날린 후, 서로 툭 까고 털어놨다.
참,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터놓다 보니, 서로 지금 위치에서 완전 산으로 간.
정말? 그게 가능해? 라고 반문할 정도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쨌을까나. 근데 왜 못하고 있는건데? 주변 환경을 너무 고려한 탓에? 한번 뒤집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먼저 걱정하기 때문에? 애써 뒤집지 않아도 우러나오는 분위기들이 날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게 뭔데, 설마 혼날까봐? 여기서 멈추면 낙오자가 될까봐? 에이 뭐 집중받지도 않는데 떨어질데가 어딨어. 우하하. 어쩌고 저쩌고……………..
이러저러 신세를 따져대다가, 친구가 이 열기를 식힐 만한 일화를 던졌다.
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교구담당 선생님들 모임이 있었는데,
자기보다 두살 남짓 어려보이는 여자애를 만났단다.
이런저런 호구조사 들어가다가 나이, 전공, 어쩌다 이 일을 하게됐는지 등등을 알게 됐는데.
이쁘장한 여자애가 건축공학 5년을 성실하게 다니고 졸업하자 마자 관련분야로 취업하지 않고 이쪽으로 왔다는 스토리.
뭔가 그 친구의 5년 본전 생각이 나서 아쉬운 목소리로 친구가 내던진 말,
“5년이나 맞지 않는 학과에서 어떻게 다닌거야? 그리고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아? 전혀 다른 쪽을 택했네.”
말똥구리같은 눈을 굴리며 본전 생각하는 친구를 아무말 못하게 한 그쪽 왈,
“그래도 5년밖에 헛된 시간 안보낸게 어디에요. 시간낭비안하고 지금이라도 찾은게 행운이죠뭐.”
그냥 멍 했단다. 멍.
지금까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절대 아냐!!!
뭐 단 한번도 없어! 라고 하기엔 내장이 좀 꿈틀거리긴 해!!!!!!!!!!!!
그래도 경험치 SAVE라고 스스로 위안 삼아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난 아직 지나온 만큼 쌓인 내공이 역부족인듯.
남들 보기엔 30 다 됐는데도 갈 길 하나 못 잡고 있는 내가 어찌 보일지 모르겠다만.
살아온 30은 경험치SAVE라고 치고, 남은 50년 (너무 오래사나?) 창창하게 살면 절대 손해보는건 아니지 않냐 이말이지.
오랫만에 말을 하도 많이 했더니
마지막에 빠이할 땐 경림언니 납시고, 홍철이 성대결절 수위까지 온 기분이었다.
자 볼까나.
목에 손수건 좀 두르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