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라는 걸 언제 알게 되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날 밤의 기운과 빨간색 주머니에 둘둘 말려있던 선물은 너무나 선명하다.
어떤 선물을 주실까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많이 말했는데 혹시 모르진 않으시겠지?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자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잠이 안 왔던 것 같다.
뒤척거리고 눈을 떴다 감았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니 인내심이 다 한 엄마는, 너 안 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만 쏙 빼놓고 가버리실걸! 으름장을 놨다.
아침인가? 그러기엔 아직 깜깜… 한데… 분명 보였다.
머리 위에 둔 큰 빨간색 주머니가 움직였고 큰 형체가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기쁜 마음보다 무서운 게 컸던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는 유령이었을까? 왜 빨간색 옷을 입지 않으셨지? 눈물까지 났던 것 같은데, 눈을 뜨면 유령이 잡아간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눈을 감고 다시 자려고 했다.
티비 소리에 깨어 멍하니 있는데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미송이, 착한 한 해를 보냈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디게 좋은 선물을 주셨나 봐.
서둘러 일어나 머리맡의 빨간 주머니 안을 보니 정말 가지고 싶었던 롤러스케이트가 들어 있었다. 편지와 함께.
처음 보는 글씨체로 편지지 가득 내용이 있었다.
내가 너를 지켜보니 이래저래 말도 잘 듣고 착하고 이렇고 저렇고 그래서 쨘 하고 나타나 선물을 두고 간다. 앞으로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이 되어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왼손으로 쓰셨는지, 애써 글씨체를 바꿔가며 쓰셨는지 엄마의 노력이 너무나 귀엽고 고마운 귀한 편지다.
동네에서 그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생각했었다.
티비에, 동화책에 나오는 산타 할아버지는 다 가짜야. 유령이라고 유령!
아마 그때부터 크리스마스이브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자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선물은 기대됐지만,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 담을 넘어 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채 살금살금 들어와서 덥수룩한 수염을 한 번 쓸어내리고 내 머리맡의 주머니에 딱 맞는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컨셉 자체를 지워버린 것 같다.
요즘 우리 집 5세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달력의 지난 날에 X를 치고 25일은 언제 오는지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정말 주시는지, 우리 집은 아파트인데 굴뚝이 없어서 어디로 들어오시는지, 오셨을 때 어떤 주스를 드려야 좋아하시는지 등등 질문도 많고 그만큼 기대도 크다.
글을 읽을 줄 알아서 택배박스는 진작에 숨겨두었고
그나마 티가 덜 나는 산타 사진 어플을 깔아 뒀다.
포장지를 새로 구해야 하는데 다이소에 가면 남은게 있으려나..
너의 크리스마스는 기분 좋은 환상이 오래갔으면 좋겠구나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