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 얼굴이 뿌옇게 보이고
칠판 글씨가 지렁이같이 춤을 추고
왜 인상 쓰냐고 선생님한테 한소리 듣고 나서
엄마랑 안경을 맞추러 간 기억이 난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날 엄청 신났던 기억도 함께.
몇 달 전인가, 그 동네 갈 일이 있어 지나가는데
그 안경점이 아직도 있어서 너무 놀랐다.
아저씨는 굉장히 불친절하고 처음 맞춘 안경이 어지러워서 몇 번을 다시 갔던 곳인데 말야.
9살 때 쓴 안경은 중2 때 콘택트렌즈로 바뀌었고
불성실한 렌즈 관리로 너덜너덜해진 눈이 일회용 렌즈도 뱉어낼 때쯤 라식 수술을 했다.
많이 알아보지 않고 아는 언니가 있는 병원에 가서 샥샥 하고
며칠 눈물 좀 흘리고 나니 세상에 밝아 보였다.
아 맹눈은 이런 기분이구나.
내 이 기분과 개운함을 평생 누리리.
고작 10년만에 그 개운함이 없어지려 한다.
어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러 갔다.
3번인지 8번인지 헛갈려서 고개를 들어 글씨가 있는 곳을 보는데
9살 때 그 날처럼 온 글씨가 춤을 추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뭐지?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떠도 그대로였다.
아 어제 밤에 핸드폰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넷플릭스 이제 좀 자제해야 하나.
아니 이렇게까지 안보인다고?
어찌저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간판을 하나 하나 훑었다.
아까처럼 춤을 추진 않았고 약간 흐릿한 정도가 남았다.
이젠 안경 맞추러 가는게 그리 즐겁지 않은데.
라식하고 안경 끼는 사람이 된 건가.
나 오늘 이렇더라 하고 친구와 톡을 하는데
빠이 할 때 쯤 던진 한 마디.
노안일수도 있어.
우리 나이면 이제 어쩌고 저쩌고 노안은 돋보기를 얼씨구 절씨구
빨리 안과 가서 시력검사 하고 싶어지네.
아직 아닐거야 그쵸? 쓰앵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