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틋한 어린 친구들과 1박 2일간의 즐거운 여행을 했다.
나이 마흔을 넘겼지만 갓 서른을 넘긴 이 친구들과의 시간과 이야기가 왜이리 재미진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에 들어간 먼지를 빼려 쳐다본 거울로 얼굴을 본 후 다시 현실로 복귀했지만.
취향으로 이어진 관계의 깊이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지낸 친구처럼 나의 오랜 습관이나 세월의 기억을 거슬러 얘기할 순 없지만
서로 알게 된 책의 취향, 편지의 감성만으로 지금 그리고 지난 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좋아했으며 좋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함과 공감의 마음이 기운다.
꽃술래 라는 술집에서 라벤더향 바람이 부는 자리에 앉아
셋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너와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는 중 순식간에 술이 깼다.
아니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입사했던 회사의 1기 선배와 이 친구의 사수가 같은 사람이었다.
회사의 특성상 결이 같지도 않고 지역도 서울이 아닌지라 생각도 못했기에 놀랐고,
내가 27살에 만난 선배를 이 친구도 그 즈음에 만났다는 것에 멈춤.
어쩜 우린 같은 사람을 두고 괴로워함도 같았나에 또 놀랐다.
그래, 그 선배는 나의 퇴사 원인 1순위였다.
15년정도 지난 지금 생각하면 괴롭힘의 ㄱ에도 못 미치는, 인간에게 있는 말못할 못된 속성 중 일부가 너무 강한 사람이라 그랬구나 싶지만
그땐 아침에 눈을 뜨면 괴로울 정도로 그 선배가 싫었고 날 못살게 군다고 생각했다.
내 어린친구의 속사정은 깊이 묻지 않았지만, 그 선배와의 시간이 괴로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여기서 또 우린 같은 줄기의 감성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에 공감했고.
선배와의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1박2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술잔이 깨지도록 부딪혔다.
입사 1년이 다 되어갈 때쯤 전국적으로 회사의 영업실적이 바닥을 치고 본사의 위엄이 흔들거릴 때
자수성가 스타일의 대표는 본사, 전국 지점장 전원을 집합시키고 1박 2일간의 연수를 가장한 진실의 방을 마련한다.
단합대회 식의 놀고 먹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큰 회의실에 60명 정도가 정자세로 앉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밤 9시까지 회의를 했다.
말이 회의지 대표가 내놓는 안건이 몇 있고, 그에 대해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모두 발언을 해야한다.
발언은 필히 왜때문에, 지금 그래서 이렇고, 앞으로 이렇게 할 것입니다의 반성문 형태로.
정말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괴한 방식의 체벌 같았다.
당시 영업기획팀의 막내인 나는 선배의 지령을 받아 대표님 근처에 자리를 잡고 녹음기를 켰다.
이틀간 누구 한 명의 목소리도 놓치지 말고 녹음할 것.
손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 타이핑할 것.
그리고 그렇게 기계에 녹음되고 워드에 저장된 날것의 팔딱 뛰는 난잡한 말들을 고상한 회의록으로 정리해서 일주일 안에 제출할 것.
선배 위에서 그 누구도 이 짓을 시킨 사람은 없었다.
다른 선배들은 이런 자리에 왜 회의록이 필요한지, 오히려 대표 날 것의 이야기를 담으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1기 선배의 말은 거스를 수 없어 에구 어쩌니 고생하렴의 말로 내 구제의 시작은 바로 막을 내리고
나는 그렇게 말받이가 되어 가슴 속에 퇴사 한 줄기를 품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다음날 집에 오니 엄마가 어느 때보다도 맑게 웃으며 빨리 앉으라고 이거 좀 먹어보라고 엄청 큰 접시를 내온다.
영덕대게가 식탁에 꽉 차고도 넘치도록 많았다.
알고보니, 60명이 모여 말을 풀어내고 혼쭐이 날 때
대표가 영덕대게 한 박스씩 일일 특급 배송으로 모든 집에 들여보낸 거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건가. 폭력의 정당화인가. 아니다 그냥 우리 영덕 자랑인걸로.
엄마는 이렇게 실한 대게는 처음 본다며 대표가 영덕 분이시라 그런가 맛도 특급이라며 회사의 위상을 높여 찬양한다.
엄마, 나 게 못먹잖아. 알러지..
씻고 거실에 드러누워 대게를 정말 맛있게 먹는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잠들었던 것 같다.
그 이틀동안 60명이 서로 떠들어대는 소리를 각본처럼도 써보고 희곡처럼도 써보고 쩜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도 써 봤지만
선배는 계속 다시, 다시 써라. 절대 통과를 시키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회의록을 쓰고 또 고치고 녹음파일을 듣는 곤욕을 치르고
이만하면 됐다며 그걸 다 프린트해서는 예쁘게 파일에 넣고 지 서랍에 넣었다. 지랑 나만 아는 일이 되었다.
그걸 난 괴롭힘이라고 정의했다.
아주 작은 일화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꽃술래에서의 이 고백은 ‘덕분에’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그 회사를 나와 생각지도 못한 쪽에 취업을 해서 이 길로 쭉 오다가
아. 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지. 생각이 들어 학교를 찾았고 지금 이 친구들을 만났고.
역시 인생은 빌런의 탄생으로 영향을 받아 흘러간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도 있었겠다는 웃음으로 다시 지난 날은 넣어버렸다.
착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는 인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