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처럼 똑같이 집 밖을 나와 걷고 지하철을 타고 음식점에 가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은 건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그렇겠지.
평소엔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질을 하거나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앞으로 전진하느라 지하철까지 가는 길에 나무가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도 모를텐데.
호기심 가득한 몸짓으로 낯선 길을 걷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고갯짓이 내가 여행 중인지를 알게 한다.
편도 240엔 이라니.
그래도 뭐. 일본이니까 뭐.
얼굴에 계란 두알 장착하고 출발.
지하철 바닥이 우리집 예전 장판하고 비슷하다.
차꼼꼼씨가 정성스레 삐져나온 운동화끈을 기술적으로 다시 묶어 안으로 밀어넣고 있다. 정말 꼼꼼지다..
도톤보리 강에 반짝거리는 조명이 켜지면 좀 나은데.
그냥 볼 땐 아무래도 우리동네 중랑천같다.
혼자 밥 열그릇은 해치운듯한 부은 얼굴이었구나.
요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다코야끼집.
근처에 엄청 큰 집도 있고 뭐 이래저래 많지만 현지인들도 줄서서 사먹는 곳이 바로 요기.
지난번 왔을때 오픈시간 전에 떠나야 해서 아쉬웠던 ‘지유켄’에 가는길.
뭘 먹으러 가는 길은 늘 즐겁지.
이랏샤이마세에에에
아주미 실샄ㅋㅋㅋㅋ 정말 저런 옷에 머리에 화장 똑같이 하시고 안에서 손님들과 인사하신다.
튀김정식에 카레를 시켜서 먹었는데.
나오니 잊혀질만한 그냥 튀김에 카레였다.
음식엔 모두 호불호가 있는 것이고 개취의 느낌이 있는 것이니. 이정도만.. 아비꼬 갈 걸..
저녁엔 고베에 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으니 이제부터 남는 시간엔 무얼 할까.
뭐긴 당연히 먹는거지.
바람도 쐴 겸사겸사 백화점 마트에서 디저트 두개 골라 옥상에 올라가서 나한입 나 또한입 나 또또한입 안먹을거면 또 나 한입. 내가 다 먹고 쉬었다.
나 좀 찍어바바바.
아 자자자자잠깐 머리좀.
오겡끼데스까..
으허허허허허허.
아라써아라써 고만 찍게 해 줄게 으허허허허.
그니까 한숨 쉬지 마… 허허허ㅓㅎ허허
아마따. 여기 MHL매장 있는데 가볼까?
아니 그게 세일한다더라구.
아니 그게말야 한국보다는 싸다더라구.
여기서 산 리미티드 리넨 에코백 세탁 잘못해서 사이즈 줄고 주글주글하고 그냥 한국 보세 쇼핑몰에서 산 거 마냥 이도 저도 아닌 모냥새로 되어 있고 난 맴이 쓰릴 뿐이고. 사자마자 내용물보다 쇼핑백이 더 이쁘다며 저걸 버리지도 않고 가지고 있다지.
좋다고 날아가기 직전인가봐.
몸에 온갖 바람이 다 들어가서 공중에 뜨기 일보직전이야. 부우웅.
고베 가기 전에 입가심으로 네기야키 먹을까?
물어봐서 뭣해. 바로 출동.
익숙한 뒷모습.
키키 ‘야마모토’ 여기 맛있다.
지난번에 오고 또 갔는데 역시 맛있다.
앙.
흐어우뜨거어우.
다 먹었어.
6시 10분.
한국이었으면 칼퇴도 못하고 저녁 뭐먹지 고민하고 있을 시간.
고베로 간다.
아니 난 널 찍으려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눈 마주쳤다고 무섭게 쳐다보면.. 안녕? ^^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폭격과 지진으로 많이 힘들었을 지역.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창밖을 보면서 고베지진 당시에 TV로 봤던 뉴스 속 이미지들이 잠시 스쳐간다.
으아. 항구 옆이란 걸 생각 못한 내가 바보.
반짝반짝 길을 밝힌 도시가 너무 아름다웠지만 바람은 매섭게 차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콧물 훌쩍이면서 아이 좋은척.
우뚝 솟은 고베타워.
참 높은데도 견고해보인다.
요걸 보고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는데 교복 입은 여고생 3명이 사진을 찍으며 깔깔깔 자지러지며 웃는다.
둘이 양손을 맞잡고 마름모꼴을 만들어 저 멀리 고베타워를 들어오게 하려는데 잘 안되는지 사진을 찍는 아이도 찍히는 아이들도 난리가 났다.
그래. 어른들이 왜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는 나이라고 말하는지. 그 때는 몰랐던 나도 이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런 아이들 옆에 가서 야야 나도 같이 하자.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와규를 먹으려고 찾았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흐..
원래 관광지 바로 옆에 즐비한 식당들은 폼은 그럴듯 하지만 맛은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지 않는 편인데.
어쩔수 없이 항구 바로 옆 괴기 레스토랑에 갔다.
분위기는 옛날 우리집 근처 지하1층에 있었던 경양식 레스토랑 백장미와 흡사하다.
기본찬은 미역줄기 같은 것 하나.
김치도 야채도 모두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대써 안머겅 고기만 먹을란다.
금액에 비해 양도 적어서 속으로 제발 맛있길 바란단다. 되뇌이고 있다 한 점 넣었는데.
아…. 너무 맛있잖아….응? 어디갔지?
살살 녹는다.
애둘아 너네는 소한테 뭐 먹이면서 키우니?
배떵떵 기분좋게 집으로 가는 길에.
고베에 있다던 스타벅스가 생각났다.
1907년 지은 목조건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더 좋을테지.
쉽게 생각하고 역에서 걸어 걸어 또 걸어 걸어 올라.. 또 걸어 진짜 많이 걸어서 올라갔다.
여름이었으면 당장 택시를 탔을만한 거리.
도착하니 영업시간은 20분 정도 남아 후루룩 마시고 나와 다시 내려 내려 내려가야 했던 아쉬웠던 곳.
분위기는 역시나 좋다.
잠시 앉아있었지만 소파에 파묻혀서 책 한권 읽으면 딱 좋겠다 싶을 정도로.
일정에 매이지 않고 편한 발로 여기저기를 다니는 여행은 서로를 편안하게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그 무엇이 상관이겠냐마는.
같이 어딘가를 가고 무언가를 보는 것엔 분명히 배려가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마지막 날 항상 내게 물어봐줬다. 이번 여행은 어땠어? 응 당연히 너무 좋았지이. 또 오고 싶다.
대답을 듣고 미소가 번지는 차남편은 하루가 됐건 며칠이 됐건 마음속에 인이 몇 개 박혔을 것 같다.
여행 전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좋으면 자기도 좋다던 차배려의 마음에 또한번 찌잉 하며
다음엔 어디를 갈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다시 되묻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런지?
익숙할거야.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