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신혼여행을 정해놓고 어디를 몇일 씩 가야하나 고민했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고르고 보니 중간에 하나 더 들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한 말라가(Malaga).
사실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것 말고는 생소한 곳이었고 해변이 유명한 지역이라 겨울엔 별로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치만 여정 중에 한 템포 쉬어가자는 결론만 보자면 참으로 완벽했던 곳.
마드리드에서 renfe 타고 6시간 가까이 이동해서 도착한 말라가는
아. 작은 유럽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멀끔하고 고풍스럽기도 하고 낮에도 밤에도 반짝이는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머물 동안 추워서 해변에도 가지 못할 테니 반짝거리는 여름의 휴양지에서 곰처럼 겨울잠을 잘 생각으로 역시나 일정 없이 계획 없이 걷고, 먹고, 쉬었다.
어둑한 오후에 도착해 한 끼 해결하러 나서는 길.
호텔 프론트에서 받은 말라가 시내 지도 한 장 들고 가방도 없이 동네 산책.
허이구 총각, 아직 뻘건불이야.
어쩜 먼지 하나 없는 듯 바닥도 건물도 깨끗하고 반짝거리는지.
아직 시에스타 시간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상점은 클로오오즈.
골목 길 요래조래 잠깐 걷다 보면 보이는 성당.
어딜 가나 지역을 지키는 성당의 존재는 위엄 그 자체.
어둑한 하늘이 배경이라 그런지 시대를 거꾸로 달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성당 바로 앞에 있던 레스토랑에 갔다.
종소리도 들리고 이제 잠에서 깨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도란도란 소리도 들리니 도시가 활기를 띤다.
밖에서 먹으려고 앉았는데 발 밑에 모여드는 구구구 비둘기 참새 천지에 경악하고 안으로.
정말 너희들은 글로벌 표준이구나.
타파스, 빠에야는 참 질리도록 먹었지만 먹을때마다 키키키.
PICASOO MALAGA MUSEO
문 닫은 시간이어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날 아침 다시 찾아오기로.
기냥 추워서 이거저거 걸쳤더니 오빠가 자꾸 형돈이와 대준이 잠바라고..
내가 봐도 디게 촌시럽닼ㅋㅋㅋ
요 골목을 싸악 돌면, 피카소 미술관
허허 본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 앞에 펼쳐진 복사본의 향연.
표정은 쓸데없이 진지.
힝. 모레 다시 올께요!
버스 타고 해변으로 나가볼까.
가는 도중에 만난 공원엔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밤이 되어가니 손시렵고 코도 삑삑 훌쩍거렸지만 손에 쪼코 젤라또 들고 우리도 앉아따 왔지.
다시 등장한 형돈이와 대준이.
배고픈데.
버스에서 내리니 야자수와 짭쪼롬한 바람이 반겨준다.
아니 어쩜 이렇게 아무도 없담!
여름엔 활기를 띠고 몇 천명의 사람들이 지나갔을 이 길.
비키니로 샤랄라거리는 원피스로 예쁘게 물들었을 테지.
겨울에 내가 왔다!!
아무도 없다아아!!
그래서 바다는 너무 무서웠다.
정말 드넓은 바다, 해변에 우리 둘.
낭만은 저 멀리 보내고 사진 몇 장 찍고 언능 나왔다.
갈 땐 버스로 계속 갔는데, 중간에 내려 광장 쪽으로 가 보니 온 천지 반짝반짝.
동화 속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르지만 감동한 마음이 벅차 올라 괜시리 뭉클하기도 했던 곳.
이런 마음, 이런 감정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지도.
이제 나도 떠나는 데에 용기가 좀 생기려나.
이 마음 흘러가기 전에 둘이 커피 한잔씩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손 꼭 잡고 집으로 총총.
창문으로 보이는 말라가.
여기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네.
다음 날은 근교에 다녀와도 좋겠다.
그래서 론다(Ronda)로 결정!
조용한 휴양지는 참 매력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