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육아의 기쁨과 슬픔 육아의 희노애락을 잘 느끼고 경험하기 위해 수반되는 것은 데일리 수면의 질이다. 몰랐지. 태어나자 마자 얘가 나를 마루타 시험하듯 한 두시간 간격으로 울어 제낄줄은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머리채를 쥐어 뜯을 줄은 드디...
- 고백 나는 엄마가 주환이 사랑하는 것보다 그것보다 더더 많이 더더더 마아아니 사랑해 몰랐지? 그럼 지금부터 알어? 아. 너무 달아 입 안에 두기도 아까운데 넘기긴 더 싫은 고백이다. 엄마 아빠가 정성껏 전한 사랑 마음에 ...
- 친절한 사람 잘 웃고 잘 대답하고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적당히 치고 빠지고. 여럿이 있을 땐 사이 사이 추임새를 넣기도 하며 공간의 기복을 만들고. 싫은 사람일지라도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퇴근길에 속으로 저주를 퍼붓는 식으로 마무리...
- 구로 끝나는 말 6살 어린이는 요즘 부쩍 한글에 관심이 많다. 받침이 없는 글자는 모두 읽고 어려워 보이는 글자는 통으로 외우기도 하고 책에서 흔히 보이는 조사를 다리건너 맞추며 더듬더듬 짧은 책 한권을 읽기도 한다. 공부 뭐 지금 안해도...
- 안경 어느 날 친구 얼굴이 뿌옇게 보이고 칠판 글씨가 지렁이같이 춤을 추고 왜 인상 쓰냐고 선생님한테 한소리 듣고 나서 엄마랑 안경을 맞추러 간 기억이 난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날 엄청 신났던 기억도 함께. 몇 달 전인가, ...
- 크리스마스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라는 걸 언제 알게 되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날 밤의 기운과 빨간색 주머니에 둘둘 말려있던 선물은 너무나 선명하다. 어떤 선물을 주실까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많이 말했는...
- 장밋빛 인생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저녁은 아빠와 나 둘 뿐이었다. 내게 다정한 사람, 우리 아빠는 그 날도 우리 딸에게 무조건 행복한 저녁을 안겨줄 거란 마음이 얼굴에 써 있었다. 아빠와 단 둘이 저녁을, 그것도 외식이라니. ...
- 좋은 인상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하여 온 우주의 습기가 피부로 들어찬 기분이었다. 운동 후 안 그래도 땀에 젖은 몸을 끌고 언덕을 오르는데 익숙하게 코를 찌르는 기운이 언덕 끝까지 없어지지 않아 앞을 보니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줄...
- 층간소음 안녕하세요. 1301호 입니다. 갑자기 올라가서 많이 놀라셨지요. 저희 가족은 지난 1년간 낮, 밤, 새벽마다 울리는 ‘쿵, 쿵’ 소리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무조건 조용히 해 달라는 것...
- 두드러기 눈이 오고 세상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던 날부터 이주 정도 주환이 얼굴, 몸에 작은 두드러기가 올라왔었다. 보습을 해도 좋아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알레르기 같다고 해서 약을 먹이니 말끔히 없어졌다. 온도, 습도, 먼지와 ...
- 낮잠 토요일 한낮 오후의 낮잠이었다. 각자 앉은 곳에서 옆으로 뒤로 기대어 이야기하고 훌쩍거리다 어느새 낮은 코골이 소리만 났다. 그새 아주 짧은 꿈을 꾼 것 같다. 모두 무채색인 공간에 상 가운데 놓인 된장찌개만 선명히 끓고 ...
- 잔소리 주환이는 요즘 확실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놀랄 만큼 늘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는. 더 신경 써서 말해야지 의식하지만 종일 붙어있다 보면 그게 참 어렵고 어렵다. 자기 전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주환아, 엄마가...
- 1월 1일 근하신년,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리라 헛된 다짐을 해도 심신과 환경을 다시 정비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이다. 누군가 뜬금없는 선포를 하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난 ...
- 평범한 하루 일이든 뭐든 날 갉아먹는 시기를 겪을 때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은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다. 우리 집 알람 주환이가 여느 때와 같이 나를 깨우고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계란말이와 소시지를 굽고 어떤 옷을 입는 게 좋...
- 7개월 만에 글을 쓴다. 겨울쯤이면 괜찮겠지 기대를 걸었던 코로나는 보란 듯 등을 돌려 매일을 살 떨리게 하고 그런 코로나를 비웃듯 산으로 바다로 다니는 사람들은 치가 떨리고. 매일 걱정과 불안을 품고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오늘 무...
- 당근이세요? 최근 한 달동안 당근에 빠져있었다. 가족 외 사람에게 ‘당근이세요?’ 이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처음엔 이게 뭐라고 너무 긴장되고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 걱정도 됐는데 근처에 가니 내가 만날 사...
- 넘겨 짚기 너는 애가 책을 그렇게나 읽으면서 엄마 마음 하나 몰라주냐? 전혀 개연성 없는 대화 흐름에 받아치질 못하고 침묵했던 것 같다. 그 때 엄마가 무엇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화를 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저 말은...
- 이층집 이름은 탐라 였다. 탐나 였나? 탐라도의 탐라인지 탐나다의 탐나인지 아직도 헛갈리지만, 어린 마음에도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을 다니던 때니 5살쯤 이었던 것 같고, 이층집 아이 탐라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화...